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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구석기시대의 오산 13
역사
1. 구석기시대 개관 / 유적 · 유물
구석기시대란 생물분류학에서 유인원과 구별해서 사람으로 분류되는 고인류가 처음 등장한 때부
터 1만2천 년 전 무렵 플라이스토세(홍적세)가 끝날 때까지에 이르는 긴 시간대에 걸친 인류문화의
원초단계를 가리킨다. 좁은 의미의 구석기시대는 돌을 때려서 만든 타제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하던
시대를 말하며, 그 이후에 돌을 갈아서 만든 마제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하던 시대를 신석기시대로 구
분한다. 인류의 조상은 두발걷기를 하며 다른 유인원과 상이한 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700만
년 전 무렵에서부터 450만 년 전 무렵 사이에 초보적 단계의 두발 걷기를 하며 살던 사헬란트로푸스
등과 같은 고인류들이 살았고, 400만 년 전에 등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람의 고유한 신체적
특징과 구조를 완성시켜 나갔다. 최초의 사람(Homo)속(屬)으로 분류되는 호모 하빌리스는 플라이스
토세의 시작과 더불어 250만 년 전에 출현하였으며 이때부터 돌로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호모속
은 현저히 커진 두뇌 용량으로 인해 이전보다 발달한 지능과 도구 제작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
결과, 호모 에렉투스 단계에서 인류는 18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나갔다.
현대인의 직접적인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20~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등장하였다. 이후 진화를
거치며 고도의 지능과 언어, 상징행위 같은 새로운 차원의 문화를 갖게 되면서 늦어도 6~5만 년 전
부터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1930년대에 두만강가의 동관진(현 강안리)에서 구석기로 보이는 유물이 발견되었으
나, 본격적인 연구는 북한지역에서 함경남도 웅기 굴포리유적이, 남한지역에서 1964년 공주 석장리
유적이 발굴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구석기 유적은 1,500곳이 넘는다. 가장 오래되었다
고 주장되는 유적으로는 상원 검은모루동굴, 단양 금굴, 석장리 하부층, 전곡리 하부층 등이 있다. 이
유적들의 나이에 대해서는 30만 년 이상, 심지어 100만 년 전의 플라이스토세 전기(약 260~78만 년
전) 혹은 중기(78~13만 년 전)라고 주장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 남한지
역에서 발굴된 유적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즉 현생인류의 등장으로 시작된 4만 년 전 이후의 후
기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만, 파주 장산리유적의 경우, 지질학적인 특징, 유적
형성과정의 검토를 비롯한 자연과학적 연대측정 결과 등을 통해 20만 년 전 이전의 연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연천 전곡리유적은 30만 년 전, 또는 10만 년 전경으로 보는 등 견해가 나뉘어져 있
다. 그렇지만, 인접한 중국에서 100만 년 전의 유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그만큼 올라
가는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높다.
구석기시대에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갈을 다른 돌에 내던지거나 돌끼리 부딪쳐 깨뜨리는 식으로 석
기를 만들었다. 이른 시기의 석기 중에 대형 석기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석영이나 규암 등 석
기 제작에 쓰인 원석의 한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러한 석재로도 점차
소형 석기를 잘 만들게 되었고 거친 원석에서 떼어낸 박편을 가공한 석기도 늘어났다. 후기 구석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