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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하는 청동기시대 전기 와 중기의 마을유적이 대부분이다. 내삼미동유적을 비롯해서 가장동유 35
적, 궐동유적이 이에 해당한다. 탑동·두곡동유적과 청학동유적에서는 중기와 후기의 무덤이 확인되 역사
었으며, 가장동과 청학동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후기의 제의시설로 추정되는 환구(의례공간)가 발굴 / 유적
되었다.(그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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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에서 가장 많은 수의 집터가 발굴된 유적은 내삼미동 유적이다. 내삼미동유적 은 필봉(해발 · 유물
144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능선인 해발 45~50m 내외의 저평한 구릉에 위치한다. 청동기
시대의 유구는 북쪽의 가지능선에 집터 6기가, 남쪽의 가지능선에 집터 40기와 구덩이 16기가 자리
잡고 있다. 유적에서 동쪽으로 1km 거리에 오산천이 위치하며, 남서쪽 200m 거리에 오산천의 지류
인 궐리천이 흐르고 있다. 구릉 주변의 골짜기는 청동기시대에 경작지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데, 이는 내삼미동의 청동기인들이 식수와 농경지를 확보하기 유리한 곳에 마을을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내삼미동유적에서 청동기시대 집터 40기가 모여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집터의 평면 형
태는 좁고긴네모꼴〔細長方形〕과 긴네모꼴〔長方形〕이 많으며, 네모꼴〔方形〕이 일부 있고, 이와 함께 방
형의 송국리식집자리〔松菊里式住居址〕도 존재한다. 좁고긴네모꼴인 30호 집터는 길이 22.42m, 너비
3.32m, 최대깊이 44cm이며, 긴네모꼴인 2호 집터는 길이 4.86m, 3.55m, 최대깊이 19cm이다. 집터
의 내부 시설로는 화덕자리〔爐址〕, 저장구덩이〔貯藏孔〕, 기둥 구멍〔柱孔〕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자리
는 집터의 장축선 중앙부를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원형 평면으로 바닥을 약간 판 구덩식화덕자리〔竪
穴式爐址〕가 많다. 규모가 작은 긴네모꼴 집터는 화덕자리가 1개인 것도 있지만, 규모가 큰 좁고긴네
모꼴 집터는 대부분 2~6개가 배치되어 있다. 네모꼴인 7호 집터는 동쪽에 치우친 곳에 화덕자리가 1
개 있으며, 그 반대편에 1.4×1m 범위로 점토다짐을 한 것이 확인되었다. 곡물 등 식료품을 담은 토
기를 안치하는 저장구덩이는 집터의 긴벽〔長壁〕 혹은 짧은벽〔短壁〕 쪽에 복수로 늘어서 있는 사례가
많다. 27호 집자리는 저장구덩이 14개가 확인되어 가장 많으며, 모서리를 비롯하여 긴벽이나 짧은벽
에 1-2개씩 있는 경우도 있다.
청동기시대 좁고긴네모꼴 집터의 연대는 기원전 11〜9세기(전기), 네모꼴집터와 송국리식집터는
기원전 9~5세기(중기), 덧띠토기가 나온 구덩이는 기원전 5~3세기(후기)로 추정된다. 오산 내삼미
동 유적은 구릉 정상부와 사면에 조성된 청동기시대 마을의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양호한 자료이다.
송국리식집터와 네모꼴집자리에서 확인된 점토다짐구역, 그리고 점토띠토기문화 시기의 구덩이 등
은 중부지역 청동기시대 문화의 전개양상을 이해하는 데에 주목되는 자료이다.
20) 청동기시대 시기구분은 (그림 23)에 제시한 조기-전기-중기-후기로 한다.
이형원, 2010, 「청동기시대 조기 설정과 송국리유형 형성 논쟁에 대한 비판적 검토」, 『고고학』9-2 : 이형원, 2011, 「중부지역 점토대토기
문화의 시간성과 공간성」, 『호서고고학』24.
21) 현재까지 오산에서 덧띠무늬토기〔각목돌대문토기〕로 대표되는 청동기시대 조기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22) 경기문화재연구원, 2011, 『오산 내삼미동 유적-오산 세교 택지개발지구내(2지점)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 한국문화유산연구원,
2012, 『오산 내삼미동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