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정경자 개인전 2023. 6. 7 – 6. 13 갤러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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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오디오를 켜며 캔버스 앞에 앉는다. 보채는 마음 없이 들숨 날숨 고르게 한 번 두 번 스무 번 그렇게 여러 번의 붓질로 나의 숨결을
                           가다듬는다. 캔버스 위의 푸른 하늘에 구름이 뜨고 강가의 수초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나의 붓은 그렇게 차곡차곡 그들의 결을 쌓아 올린다. 이른

                           아침 차분한 바람 속에 몸을 낮추는 잡초를 보며 겸손하게 내 마음 낮추고, 노을빛 여린 강 윤슬에 잔잔한 위로를 받는다. 좁은 벽 틈에 손톱만 하게

                           핀 꽃, 창문을 열면 살랑이던 솔바람. 나의 그림의 소재인 자연은 이렇게 곳곳에서 30여 년간 자기 빛을 내며 그렇게 나를 보듬어주고 있다. 봄의 여

                           린 새싹, 쨍 한 햇살아래 냇가에 발 담그는 여름, 바삭한 낙엽 밟는 가을, 코 끝 시리게 차갑고도 하얀 겨울 이 모든 계절을 차곡차곡 그림에 담으면

                           서 또 내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기대하고 설렌다. 나는 늘 그 설렘으로 붓을 잡는다. 언제나 고요할 수만은 없는 나의 마음, 그 복잡한 가닥들은

                           그림 작업으로 차분하게 정화한다. 따스한 봄바람 같은 순간에도 메마르고 숨 가쁘던 순간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온 35년의 호흡은 작품에 그대로

                           담겨있다. 지금까지 나의 작업과 그 호흡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자연에게서 느끼고 배우며 묵묵히, 꾸준히 걸어온 시간들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

                           어갈 나의 그 시간을 기대해 본다. 나의 작품을 마주하는 시간이 스치듯 짧아도 괜찮다. 그 앞에 길고 오래 머물러도 좋다. 그 시간만큼은 참 기분 좋

                           은 산책이었다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당신의 이 자리에도 잔잔한 호흡의 리듬이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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