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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 1 Miyazaki’s Films
Background Knowledge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감독
대표작으로는 <이웃집의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이 있다. 1941년 도쿄도 분쿄구 아케노보초에서 태
어난 미야자키 하야오는 1978년 <미래 소년 코난>을 연출해 애
니메이션 팬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1979년에는 첫 극장용 <루팡 3세 카리오스트로 성>이 개봉, 애
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원래 만화로 연재했던 <바
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영화화해 1984년 상업적으로 대흥행을
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소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
립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작품은 <천공의 성 라퓨타>로 일
본에서 80만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실사에서 표현할 수 없는 카메라 기법과 리얼한 배경 등이 돋보여
그가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대부에 오르는 데 큰 몫을 했다.
1988년에는 <이웃집의 토토로>가 개봉하여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의 모든 극영화를
제치고 국내 모든 영화제의 상을 휩쓸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서 <반딧불의 묘>를 개봉시
켜 역시 대성공을 이루었다.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마녀 배달부 키키> 또한 흥행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그해 일본의 키네마 준보가 집계한 연간 흥행 순위에서 무려 300만 명이라는
폭발적인 관객 확보에 성공하였다. 1979년 <은하철도 999>의 극장판 이후 20년 만에 만화영
화가 연간 흥행 순위 1위에 랭크되는 쾌거를 올렸다. 이어 발표한 <추억은 방울방울>이 다시
그 기록을 갱신했다.
1992년 7월 개봉된 <붉은 돼지>가 기록갱신 및 1993년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94년 <헤이세이 너구리 대 전쟁> 역시 흥행에 성공하였고 애니메이션 최초로 아카
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일본 대표로 출품되었다. 1997년 7월 <원령공주>가 개봉되어 일본
관객 1천4백만 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1년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
본에서 주말 3일 동안 122만 명의 관객을 동원, 16억 3천만 엔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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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ground Knowledge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감독
대표작으로는 <이웃집의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이 있다. 1941년 도쿄도 분쿄구 아케노보초에서 태
어난 미야자키 하야오는 1978년 <미래 소년 코난>을 연출해 애
니메이션 팬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1979년에는 첫 극장용 <루팡 3세 카리오스트로 성>이 개봉, 애
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원래 만화로 연재했던 <바
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영화화해 1984년 상업적으로 대흥행을
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소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
립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 작품은 <천공의 성 라퓨타>로 일
본에서 80만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실사에서 표현할 수 없는 카메라 기법과 리얼한 배경 등이 돋보여
그가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대부에 오르는 데 큰 몫을 했다.
1988년에는 <이웃집의 토토로>가 개봉하여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의 모든 극영화를
제치고 국내 모든 영화제의 상을 휩쓸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서 <반딧불의 묘>를 개봉시
켜 역시 대성공을 이루었다.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마녀 배달부 키키> 또한 흥행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그해 일본의 키네마 준보가 집계한 연간 흥행 순위에서 무려 300만 명이라는
폭발적인 관객 확보에 성공하였다. 1979년 <은하철도 999>의 극장판 이후 20년 만에 만화영
화가 연간 흥행 순위 1위에 랭크되는 쾌거를 올렸다. 이어 발표한 <추억은 방울방울>이 다시
그 기록을 갱신했다.
1992년 7월 개봉된 <붉은 돼지>가 기록갱신 및 1993년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94년 <헤이세이 너구리 대 전쟁> 역시 흥행에 성공하였고 애니메이션 최초로 아카
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일본 대표로 출품되었다. 1997년 7월 <원령공주>가 개봉되어 일본
관객 1천4백만 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1년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
본에서 주말 3일 동안 122만 명의 관객을 동원, 16억 3천만 엔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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