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수영만68_7A7_8B5_9C4
P. 3
Unit 1 The Salons of Paris
테오와의 다툼과 각박한 파리 생활에 지친 반 고흐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계획으로 1888
년 남프랑스로 갔다. 그 곳에서 그는 열다섯달 동안 <정물:열두송이의 해바라기가 있는 꽃병
>(1888)과 <밤의 카페테라스>(1888)를 포함해, 2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다. 같은 해 10월, 고
갱이 반 고흐의 '노란집'으로 이사를 왔다. 두 화가는 몇 주간 함께 작업을 했으나, 결국 사이가 악
화되어 급기야는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고갱은 떠나갔고, 반 고흐는
병원에 입원했다. 1889년 5월, 반 고흐는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찾아가, 그곳에서
1년간 머물면 치료를 받았다. 그 와중에도 그는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고, 심오한 정신적 의미가 담
긴 표현주의적인 작품<별이 빛나는 밤>(1889)을 그렸고, 또 병원근처에 있던 작은 숲의 짙은 삼나
무와 올리브나무도 자주 그렸다. 뿐만 아니라 그가 좋아하던 밀레와 오노레도미에, 외젠들라크루아
의 작품들을 모사하기도 했다.
-3-
테오와의 다툼과 각박한 파리 생활에 지친 반 고흐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계획으로 1888
년 남프랑스로 갔다. 그 곳에서 그는 열다섯달 동안 <정물:열두송이의 해바라기가 있는 꽃병
>(1888)과 <밤의 카페테라스>(1888)를 포함해, 2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다. 같은 해 10월, 고
갱이 반 고흐의 '노란집'으로 이사를 왔다. 두 화가는 몇 주간 함께 작업을 했으나, 결국 사이가 악
화되어 급기야는 반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고갱은 떠나갔고, 반 고흐는
병원에 입원했다. 1889년 5월, 반 고흐는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찾아가, 그곳에서
1년간 머물면 치료를 받았다. 그 와중에도 그는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고, 심오한 정신적 의미가 담
긴 표현주의적인 작품<별이 빛나는 밤>(1889)을 그렸고, 또 병원근처에 있던 작은 숲의 짙은 삼나
무와 올리브나무도 자주 그렸다. 뿐만 아니라 그가 좋아하던 밀레와 오노레도미에, 외젠들라크루아
의 작품들을 모사하기도 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