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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인물
진시황(秦始皇)
해마다 가을이 오면 내 고향에 가고 싶다.
수십년만에 찾아가는 고향엔 그리운 친구도 없고 초가지
붕 위로 정겹게 피어오르던
중국 역사를 통틀어 진시황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매우 드물다. 중국인들은 물론, 우리 한
저녁 짓던 하얀 연기도 보이지 않겠지만,
국인들도 대부분 그가 이룩한 업적이나 만행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심지어 서구인들까지도 진시황
그래도 옛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누워있는
을 알고 있다. 중국의 영어 표현인 China 도 그가 통치했던 진(秦) 이라는 국호에서 유래한 것이다.
뒷동산에 가면 누군가 나를 반겨줄 것만 같다.
타향이 되어버린 내 고향엔 하룻밤 재워줄 사람도
주지하는 대로 진시황은 40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이제는 없으니 허름한 민박집이라도 찾아보아야 하겠지. 를 이룩하여 강력한 대제국을 건설하였고, 북방의 흉노족을 정벌하
여 내몽고 지역까지 중국 영토로 편입시킨 정복군주이었다. 그가 시
작한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인 만리장성은 오늘날 중국의 상징이 되
었을 뿐만 아니라 매년 엄청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중국의 보물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강력한 리더쉽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국민들에
게 끼쳤다. 만리장성 축조에 연인원 15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었고 그중 죽은자가 수없이 많아 한번 징발되면 살아서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떠나야 했다. 460여명의 학자들을 생매장하고 책들
을 불태운 분서갱유(焚書坑儒)는 그가 저지른 희대의 만행으로 현재
까지도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아방궁 건설, 불로초 등 진시황에 관
한 화제는 매우 흥미롭게 전해지고 있다. 이었으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수천년전의 문자통일이
기반이 되어 중국은 간자체(簡體字) 및 북경 표준어를 개발하였고,
오늘날 역사를 공부한 중국인들은 진시황의 최대 업적을 만리장성
TV,인터넷등 대중매체의 발전에 힘입어 이제 소리의 통일까지 이룩
이나 전국통일이 아닌 문자의 통일로 꼽고 그를 중국 역사상 가장
해 나가고 있다.
위대한 인물로 추앙한다고 한다. 일견 문자의 통일이 그토록 위대
한 업적인지 의문이 갈 수 있지만, 기나긴 역사를 통해 중국이 그렇 진시황이 시작한 2200년에 걸친 중국어의 문자와 말의 완전한 통일
게 큰 영토를 유지하고 북방민족들의 침입에도 오히려 그들을 동화 은 거대한 영토와 15억이 넘는 인구의 중국을 더욱 무서운 나라로
시켜 오늘의 세계 최강국 대열에 설 수 있게한 원동력이 문자의 통일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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