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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나라를 지킨 영웅 충무공 이순신
1592년 4월13일, 부산포에 첫 발을 디딘 왜군은 이틀 만에 동래성 에 꼽힐 정도로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쟁으로 기록돼 있다. 일부에
을 함락시키고, 세 길로 나누어 서울을 향해 북상한다. 중로(中路)는 서는 세계 3대 해전뿐이고, 4대 해전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는 주장
동래→대구→상주→충주→여주로, 동로(東路)는 동래→언양→경 도 있으나, 이순신과 거북선은 미국 워싱턴의 전쟁기념관, 영국 해
주→충주→용인으로, 서로(西路)는 김해→성주→추풍령→영동→ 사박물관, 중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역사기념관에
청주를 거쳐 서울로 진격했다. 불과 20일 만에 서울도 함락되고, 6 전시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월에는 평양과 함경도까지 진출했다. 한마디로 파죽지세. 조선의 운
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요즘 말로 ‘훅 하면 사라질’ 위기였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두 번에 걸친 왜군과의 7년
전쟁 중에 총 23번을 싸워 23번을 이겼다. 즉 23전23승이다. 해전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천히 걸어가도 20여일 걸린다. 조선의 군대 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영국의 외교사가인 머독(James Mur-
는 왜군의 기세에 눌려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혼비백산 사라진 기막 doch, 1856~1921)은 한산대첩을 가리켜 “이 해전은 한국의 살라
힌 상황이었다. 조선의 운명이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인해서가 아 미스 해전이라 할 수 있으며, 일본 침략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
니라 310여 년 전에 이미 일본에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대 치욕적 이다”라고 평가했다.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왜군은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식량과 군수 통영에서는 한산대첩 370주년이 되던 1962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나라를 구한 가장 위대한 물자 등 더 이상의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 이순신 장군의 순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한산대첩축제를 개최했다.
선의 육군이 지리멸렬하면서 연전연패하는 반면, 수군은 연전연승 1961년 온양에서 온양문화제란 이름으로 이순신 장군관련 축제를
인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주저없이 꼽을 것이다. 하면서 왜의 주요 보급로를 차단, 왜군의 진격에 심각한 타격을 입 열었으나 이순신 장군 이름을 걸고 축제를 개최한 것은 처음이다.
혔다. 수군의 중심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그는 풍전등화의 조선 53회째를 맞은 올해도 8월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병선(문화)마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큰 위기였던 임진왜란은 지도자들이 을 살린 구세주였다. 당 및 통제영, 이순신공원 등 통영시 일원에서 한산대첩을 재현하는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당파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던 시기에 일어난 국난이었다. 이순신과 한산대첩, 임진왜란의 대세를 조선으로 바꾼 최대의 인물
이고 최대 전환기적 사건이다. 한산대첩은 행주대첩, 진주성대첩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역경속에서도 굳건히 나라를 지킨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으로 꼽히며,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인 명
량대첩과 노량진대첩 중에서도 으뜸으로 평가받는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략가이자 우리 민족의 영원한 수호신이다.
한산대첩은 기원 전 480년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살라미스
(Salamis)해전, 1588년 영국 하워드의 칼레(Calais)해전, 1805년
영국 넬슨의 트라팔가(Trapalgar)해전 등과 더불어 세계 4대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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