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월간사진 2018년 1월호 Monthly Photography Ja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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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업을 처음 본 게 2014년이다. 화려 ‘Nonlinear’라는 제목의 의미가 궁금하다
Choi Yohan 했던 작업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최근 시리즈 ‘비선형’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순례길을 가
를 보면 분위기가 굉장히 침착해졌다.
는 이유를 나열한다면 그 모습이 직선적(똑같거나 혹은
-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Eternal eye>에서 보았던 극적인 상태를 향해 가거나)이진 않을 것이다. 아마 파
인간 채집 작업인 것 같다. 겉모습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를 꼬집 동의 형태를 띠지 않을까 싶다. <Nonlinear>가 거대한
는 작품이었다. 당시 찍고 있던 사진들을 누군가에게 담론을 끌어내는 것도 아닌, 큰 서사를 이루는 것도 아
보여주면 왜 세련된 걸 찍지 못하냐는 다소 부정적인 닌, 소소한 것들이 뭉쳐 잔잔한 힘을 발휘하는 작업이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특이하고, 센 사 었으면 한다. 시간이 흘러도 이 파동의 양쪽 끝이 만나
진도 찍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한 번 튀는 작업 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을 시도해봤다. 다만, 그 이후부터는 원하는 것들을 담 작업 목적으로 순례길을 걸은 것인가?
담히 카메라로 채집하고 엮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속도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쉴 새 없이 일하고, 쉴 새
가장 가까이 있지만 가장 잘 알지 못하는 존재인 아버 없이 작업하는 생활패턴에 지쳤었다. 순례길만 들어서
지를 이야기하는 <볼멘소리>(2014~)와, 산티아고 순 면 모든 것이 느슨하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
례길에서 작업한 <Nonlinear>(2017~)가 대표적인 시 만 결국에는 작업을 하게 됐다. 저마다 갖고 있는 ‘순례
리즈다. 현재 두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길을 걷는 이유’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재
이미지를 채집한다는 것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 밌는 건, 분명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기 위해 갔는데 또
로 다가오는가? 다른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도둑 걱정, 언어 문
채집이라는 단어의 어감을 좋아한다. 채집이라는 것은 제, 인종차별 등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어찌 보면 쉽고 단순한 일이다.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만나는 작업인데, 어느 정
것을 그저 갖고 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도까지 관계 맺기를 시도했는가?
것도 일종의 채집이다. 사진은 어떤 대상을 찍음으로써 사실 끈끈한 연대감과 친밀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
그것을 오랜 시간 소유하는 것이다. 진부한 표현이지 니다.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이유와 목적’에
만, 한 마디로 ‘욕망’인 셈이다. 더 주목하고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목적을 갖고 채집을 하는가. 아니면 채집을 하 직설적인 <볼멘소리>와는 다른 온도다.
고 의미를 부여하는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모르고, 또 어떤 이유가 나올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볼멘소리>와 순례길에서 마주 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했다. 불확실성이 가져다주는
한 것을 촬영한 <Nonlinear>는 목적이 분명하다. 어떤 매력이 있었다. 그러던 중 작업과 관객 사이에 공간이
이야기를 할지 정한 다음, 이와 맞닿아 있는 사물들을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느슨한 이미지의
채집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카메라를 들고 길을 걷다가 연대 속에서 관객이 다양한 상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도 소유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는다. 그리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고 이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단, 목적 없이 촬 전시 형식보다는 책으로 구성했을 때 파급효과
영한 사진들은 <볼멘소리>와 <Nonlinear> 작업에는 포 가 더 클 것 같다.
함시키지 않는다. 두 작업 모두 인물과 그 주변 이야기 홈페이지나 포트폴리오는 3~4장의 사진을 한 화면에
를 다루는 작업이기 때문에 철저히 계산을 하고 사진을 엮을 수 있어 내러티브를 구성하기가 용이하다. 하지만
찍는다. 목적을 두고 하는 작업은 시간을 두고 예민하 전시는 맥락이 다르다. 아직까지 전시장에서 사진의 간
게 작업하는 편이다. 격을 좁힐지 넓힐지, 텍스트가 담긴 사진을 어떻게 배
최신작인 <Nonlinear>를 이야기해보자. 인물 치시킬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분
을 깊게 탐구하는 작업인가? 명 사진 한 장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데, 이러한 개개의
순례길에서 진행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사진을 엮을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지 링겔만 효과가
최요한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
인 이유로 순례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유가 나타날지는 지금으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작한다. 그런데 사진을 볼 때마다 왠지 남 얘기 같
다양하다.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 작업을 통해 나를 알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사
지가 않다. 사진에서 드러나는, 그의 삶에서 떨어진
성과 다양성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작업이 <Nonlin- 회에 균열을 내고 싶은 것인가?
파편들이 보는 이의 가슴에 콕콕 박히기 때문이다.
ear>다. 사진 속 인물은 순례길을 걷다가 만난, 나와 마 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균열 보
그의 작업은 몇 장의 사진들이 한데 묶였을 때 파급
음이 맞았던 사람들이다. 하루 종일 함께 걸으며 이야 다는 어떤 미묘한 사안에 작은 불씨를 지핀다고 할까.
력이 배가된다. 만약, 오랜 시간 그의 작업과 마주
기를 나누다가, 헤어질 때쯤 이곳에 온 이유를 종이에 작업 속 한국 사람들의 ‘순례길 방문 이유’는 사회 현상
하게 된다면 기록이 모여 진정성이 되고, 그 진정성
이 다시 감동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적어달라고 했다. 종이에 글자를 써내려갈 때의 모습을 과 엮여 있다. 취업 스트레스, 눈치 보고 쓰는 휴가 등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재학 중이다. 사진으로 기록했고, 이후 그 모습과 비슷한 느낌을 주 대표적이다. 이런 사회를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는 오브제들을 채집했다.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www.choiyohan.com
에디터 | 박이현· 디자인 | 김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