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월간사진 2017년 6월호 Monthly Photography Ju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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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_최종(수정)_월간사진 2017-05-22 오후 4:05 페이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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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경이로운 피사체다.
- 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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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리의 흔적
2011년, 일본 여행을 할 때 페리를 탄 것을 계기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육지에서는 내가
걸어온 길이 어떤 형태였는지 보이지 않는 반면, 페리는 지나온 길을 잠시나마 아름다운
거품으로 남겼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배의 2층에서 물결의 움직임을 고속 촬영했다.
# 포토콜라주로 완성한 단 하나의 풍경
<Invisible Seascape>는 일상적인 바다처럼 보이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단 하나의 풍
경이다. 고속 촬영한 이미지를 적게는 수 십 장, 많게는 백 여 장을 합성해 하나의 풍경으
로 완성했다. 최종 작업에는 페리, 크루즈 혹은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촬영한 이미지가 사
용되었다. 대용량의 사진을 콜라주하다 보니 작업 시간이 오래 걸렸다. 웬만큼 큰 이미지
용량보다도 훨씬 큰 파일(대부분 가로 1m, 세로 3m가 넘는 대형 작업이다)을 다루다보
니 기술적 어려움이 있었다. 하루 종일 이 작업에 몰두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작품을 완성
하는 데 두 세 달이 걸릴 정도였다.
# 조금씩, 천천히 사진을 읽다
세로로 긴 포맷을 택한 이유는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움직이며 조금이라도 시간차를 두
고 사진이 읽혀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작품 앞에 선 사람이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움직여
가며 마치 작은 길을 따라 걷듯 작품을 감상해주길 바랐다.
# 액체, 그 신비로운 피사체
<Invisible Seascape> 시리즈를 시작으로 <The Tempest>, <Absolute Resistance> 등
물을 소재로 한 작업을 여럿 발표했다. 어려서부터 별이나 하늘, 구름 등 자연의 변화를 관
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 물의 움직임은 아무리 관찰해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오묘
한 것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실제와 가상의 경계에
서 진동하는 무엇이었다. 고속으로 촬영한 물의 이미지는 육안으로 쉽게 관찰하지 못하
는 순간의 미학을 담고 있다. 때문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카메라를 통해 존재의 영역으로 끌려나오게 된다. 직접 보고자 했지만 볼 수
없었던 것이 사진 속에 각인되는 것을 확인한 순간 특별한 전율을 느낀다.
# 거품이 만들어낸 장엄한 풍경
어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하거나 설득하고자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Invisible
Seascape> 작업을 할 무렵에는 ‘인생을 긍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미래에 대한 낙
관이 아니라, 각자가 지나온 길에 대해 갖는 긍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작은 거품들이 모인 장엄한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작업을 통해 반드시 전달되어야 하는 메시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준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예술사를 공부하고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사진 석사 과정
을 마쳤다. 찰나의 순간을 절묘하게 기록하는 카메라의 속성을 탐색한 다양한 시리즈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독일, 영국, 포르투갈, 홍콩, 프랑스, 스위스 등 세계 각국에서 전시를 열었다.
지난 5월 홍익대 대학원 박사과정 청구전 <Unveiled Scape>(금산갤러리, 서울)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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