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월간사진 2018년 11월호 Monthly Photography Nov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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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053)스위스_최종_월간사진  2018-10-22  오후 2:56  페이지 047













                          사건의 재구성                               스위스에서 활동 중인 코르티스&존데레거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진을 이용해서

                                                                매체의 진실성을 이야기하는 사진가 듀오다. 에디터 | 박이현 · 디자인 | 전종균











                                                                먼저, 눈앞에 보이는 사진의 위아래와 양옆을 흰 종이로 가려보자. 혹, 디지털 매체로 사진을 보는 것이라
                                                                면, 사진 중앙 부분이 화면에 꽉 차도록 핀치줌 혹은 마우스 스크롤을 이용해보자. 트리밍 된 사진에서 어떤
                                                                익숙함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이다. 단언컨대 그 익숙함은 9·11
                                                                테러, 일본 나가사키 원폭 투하, 로버트 카파의 ‘어느 병사의 죽음’, 천안문광장에서의 급박한 모습에서 오
                                                                는 것일 테다. 이제 사진을 원상태로 되돌려보자. 이내 사진 주변으로 어지럽게 놓여 있는 오브제들을 발견
                                                                하게 될 것이다. 사진에 감쪽같이 속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코
                                                                르티스 & 존데레거(Cortis & Sonderegger)의 사진적 장치 때문이다.


                                                                유명한 사진을 미니어처로 재현하다
                                                                코르티스&존데레거는 스위스 취리히예술대학교 시절부터 영혼의 단짝이었다. 같이 사진을 공부한 것도
                                                                모자라 미술과 영화, 음악 취향까지 비슷했다. 팀을 이뤄 다큐멘터리 기반의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사
                                                                회에 나와서도 함께 신문사와 잡지 사진가로 일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있던 일까지
                                                                줄어들었다. 시간을 허비하느니 남는 시간에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둘은 새로운 작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Icons>다.
                                                                재미삼아서 고가의 사진을 미니어처로 재현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사진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라인
                                                                Ⅱ(Rhein II)’였다. 처음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라인강을 제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사진이나 신디 셔먼 같은 사진가의 포트
                                                                레이트를 미니어처로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코르티스&존데레거는 인물이 별로 등장
                                                                하지 않는,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거나 역사적으로 상징성 있는 사진을 작업에 이용하기로 했다.
                                                                <Icons> 초기 작업에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제작 과정을 프레임 안에서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스튜디오에 산재해 있는
                                                                스탠드와 시멘트, 접착제, 종이, 페인트 등이 사진 안에 그대로 담겨있다. 무엇보다도 후보정을 과하게 했을
                                                                것 같지만, 의외로 포토샵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색과 콘트라스트를 조절할 때만 포토
                                                                샵을 사용했을 뿐이다.

                                                                ‘사진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그 흔한 말
                                                                코르티스&존데레거의 <Icons>에는 과거와 현재가 병치되어 있다. 미니어처는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사건을, 스튜디오 환경은 사진이 재생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전면에 내세운 건 ‘인간 기억’에 대하
                                                                여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어떤 일을 기억하고자 할 때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공백을 채워 넣어야 하
                                                                는데, 이 간극에 외부 힘이 개입되면 기억은 조작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진실이라고 믿었던 어
                                                                떤 기억에 관한 ‘신화’가 깨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기억을 해체하는 데 목적을 둔 작업은 아니다. <Icons>는 유명한 사건을 통해 ‘집단 기억
                                                                (Collective memory, 과거는 순수하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에 따라 재구성된다)’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사진에 의해 집단 기억이 생성되는 과정을 경계하는 것에도 의미를 두고 있
                                                                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사진들을 이용한 건 그런 연유에서다. 어떤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상징성을
                                                                지닌다. 더 나아가서는 완벽한 ‘팩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은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발
                                                                생한 사건 자체는 사실이지만, 사진가가 프레임을 구축해 셔터를 누르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작업은 아주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사진은 객관적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다시
                            Jojakim Cortis & Adrian Sonderegger
                            연출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          말해, 진실이라고 믿는 사진 한 장에 새겨진 기억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진은 사건의 단편
                            는, 스위스에서 활동 중인 사진가 듀오. 2005년 취      적인 부분만 보여주기 때문에 전체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어떤 권력이 내뱉은
                            리히예술대학교 시절부터 듀오로 활동했다. 지난
                            <2018 대구사진비엔날레> ‘특별전’에 참여했다.        말에 선동되지 말 것. 이것이 <Icons>가 던지는 메시지다. 이들이 제작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는 이유 역시,
                            www.ohnetitel.ch                    진실이 너무나 쉽게 왜곡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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