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월간사진 2018년 3월호 Monthly Photography M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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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View
1970년대 학교에서 행해지던 예방접종을 받는 학생들(1970 서울안산초). ⓒ 김완기
구닥다리, 손맛, 그리고 옛날이야기
“엄마는 언제부터 그렇게 늙었어?” 동창의 고등학생 딸이 엄마의 옛날 졸업앨범 사진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순진무구한 딸 이야기에 주변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순간 졸업앨범 속 그때 우리 모습을 떠올려봤다. 촌스럽지만 풋
풋한 그 시절, 세월을 원망할 틈도 없이 우리는 졸업사진 얘기로 폭풍 수다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옛
날이야기들, 소소한 추억담은 이렇듯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곤 한다.
요즘 아날로그 사진이 화두다. 이미 잊힌 과거를 추억하게 만들고, 삭막한 현실에 촉촉한 감성을 불어넣는다. 추억을
떠올리며 옷장 속에 처박아둔 오래 전 필름 카메라를 꺼내보는가 하면, 젊은 2, 30대들은 중고장터를 뒤져 낡은 필카
(필름카메라)를 구입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구닥다리’라는 뜻의 ‘구닥’ 포토 어플리케이션이 히트를 쳤을까. 촌스럽
고 구닥다리가 돼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시대, 바야흐로 아날로그의 새로운 전성시대다.
그러고 보니 유독 아날로그 사진전이 많이 열리는 요즘이다. 수십 년 전 필름카메라로 찍은 투박한 옛날 사진부터 세
련된 구도의 아날로그 풍경사진까지, 모두가 메마른 우리네 감성을 건드린다. 얼마 전 열린 장상기 개인전 <옛 이야
기 20>은 강원도 양양의 오래 전 소박한 장터 풍경을 담고 있다. 지리산 산골마을 집배원의 모습을 기록한 조성기의
전시도 있었다. 오랜 시간 교직생활을 하며 학생들의 생활상을 소박하게 담아온 김완기 작가는 지난해 이해선 사진
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촌스럽지만 정겨운 그 시대 얼굴들은 아날로그 사진이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한지 프린
트로 유명한 이정진 역시 오랜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연다. 스페인에서는 브라사이가, 오스트리아에서는 아라키를
비롯한 유명 아티스트들의 폴라로이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와 함께 <월간사진> 3월 특집 기사는 젤라틴 실버 프린
트, 검프린트, 콜로디온 습판법과 백금프린트 등, 여전히 아날로그 작업을 고수하는 국내 사진가 3인의 ‘손맛 나는’
작품도 소개한다. 그리고 최고의 필름카메라와 함께, 아날로그 사진작업에 대한 다양한 노하우도 소개한다.
10년 넘게 장터 사진을 찍은 장상기의 작가노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어물전에서 마른 명태를 파는 할머니가 나
를 알아보고 아직도 사진 찍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옛날이야기 한 번 하셨슈우~?” 한다. 오래 전, 사진
을 왜 찍느냐고 물어봤을 때 “훗날 옛날 얘기하려고요.”라고 대답했는데 아마도 그 얘기를 기억하시나보다. 그런데
비로소 이제야 그 옛날이야기를 하나 보다. 1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를 하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꿈인 듯하다.” 강원도 양양 장터의 모습을 소박하게 표현한 작품.
장상기 ‘옛 이야기 20’- #013 Gelatin Silver print
아날로그 사진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디지털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손맛과 묵직한 이야기들, 아날로그 감성 12 X 16inch, 2018
을 지닌 당신에게 <월간사진> 3월호가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 박현희(편집장) · 디자인 | 전종균
Solovki,--mer Blanche, Russie, 1992 Pentti Sammallahti,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