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월간사진 2018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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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에디터뷰_ok_월간사진 2018-11-21 오후 5:23 페이지 026
/ Editor's View /
마디라도 있어 이만큼 견딜 수 있음을···
낭만적인 겨울이 대나무에겐 생사를 넘나드는 인고의 시간이다.
대나무는 밤새 내린 흰 눈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부러진다.
가벼운 눈이 견고하던 대나무를 무너뜨리는 순간이다.
바람이 분다. 삶은 흔들림의 연속이다. 자의든 타의든 흔들고 흔들린다. (중략)
대숲에 이는 바람이 훑고 지나간 후 눈꽃이 지상을 향해 화려한 추락을 한다.
바람이 대나무에게 전해주는 선물이다.
어느덧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정겹다. 바람을 맞는 대나무는 땅속으로 굳건한 뿌리를 내린
채 흔들림을 즐긴다. 산다는 것이 행복과 기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삶의 기억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고통을 딛고 흔들림을 극복하는 묵묵함 속에서
참된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원춘호 <죽림설화(竹林雪花)> 작가노트 중에서
Wind 4_75x107cm_Archival Inkjet Print_2018 ed 1-5
작가노트의 힘
하얀 눈 속 대나무, 그저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가녀린 몸이 이렇듯 처절한 삶의 철학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
다니.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의 내공은 역시, 어쩌다 생긴 게 아니었다. 추위, 바람, 눈의 무게를 모두 감내한 결과일 것이다.
대나무는 힘든 시간동안 잠시 성장을 멈춘다고 하다. 대신 그 시간을 묵묵히 참고 기다리며 힘을 모은다고 한다. 이때 마디가 생기고, 그렇
게 생겨난 마디들은 대나무를 쭉쭉 자랄 수 있게 해준다. 사람에게도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작가노트를 읽고 나니, 새삼 작품이 다르게 보인다. 사실 그동안 여러 사진가들이 대나무를 찍어왔다. 사실 새로울 게 없는 대나무 사진일
수 있지만, 작가의 철학이 담긴 대나무 사진은 어쩐지 ‘특별’하다. 이것이 바로 작가노트의 힘 아닐까. 작가노트란 것이, 굳이 현학적인 단어
와 미사여구로 치장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담백한 글,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작가의 시선이 더 큰 울림을 전해준다. 눈이 내리면 그곳에 가
서, 대나무숲 향기를 흠뻑 맡아보고 싶다. 글 박현희(편집장) · 디자인 |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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