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이한우 개인전 묵언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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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으로- 53.0 × 45.5, Oil on canvas

                                                     늦게 도착한 바람 - 이한우

                                                       창밖에 바람이 분다
                                                      늦게 도착한 바람이다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활짝 열기 두려워
                                                  마음의 틈새만큼 살짝 문을 벌리자
                                                오랜 기다림처럼 파고드는 바람의 칼날
                                                 낭자한 선혈, 누아르 영화의 장면 같은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이 꺽꺽대며 목울대에 걸리고
                                            휘갈겨 쓴 낙서처럼 그림이 되지 못한 이미지들이
                                                      산탄총알처럼 터지는 밤

                                       결코 짧지않은 날들을 걸어왔지만 삶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아
                                       나는 첫 무대에 오른 어설픈 배우처럼 낯선 연기에 진땀을 흘린다
                                                  밤은 깊어가고 앞은 보이지 않는데
                                                   침묵은 죽음처럼 입을 다무는데

                                               그래도 바람은 등을 떠밀고 가라고 가라고
                                                   어설픈 연기라도 하라고 하라고

                                                  늦게 도착한 바람에 떠밀려 오늘도
                                                붉은 내 그림자를 끌고 한 걸음을 더하며

                                                  서툰 붓질 같은 날을 하루 더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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