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Korus Club 24권(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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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독서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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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자 미하일 캇코프에게 ‘어느 범죄에 관한 심리 보고서’라는 짧막한 단            상한 사상의 영향으로 졸지에 살인자가 된 것이다.
             러시아문학의 백미 (白眉)  죄와 벌                                                                                                       편소설을 발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는 살인 후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불안과 정신적 혼란에 빠
                                                                                                                                        단편소설은 조용히 장편소설로 발전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다른 모든                지게 된다. 살해하기 전에는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
                                                                                                                                        문학활동을 접고 1868년 내내 이 소설만 집필했는데, ‘죄와 벌’의 새로          하여 죄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다.
                                                                 두 노파를 살해한 페테르부르크의 한 대학생을 그린 도스토옙스키의
                                                                                                                                        운 장들이 ‘러시아 통보’에 서서히 발표됐다. 작가 자신의 고백에 따르
                                                                 소설 ‘죄와 벌’은 러시아 문학과 문화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과 문화에
                                                                                                                                        면, 도스토옙스키는 ‘유형수처럼’ 갇혀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도 않고             결국 훔쳤던 돈과 보석을 확인도 하지 않고 땅속에 숨기고서 돌로 그것
                                                                 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죄와 벌’은 지금도 창작과 철학적 탐구의 원
                                                                                                                                        사람들 사이에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집필 작업에 매달렸다. ‘죄와 벌’            을 은폐시키게 된다. 다행히 구체적인 목격자와 물적 증거가 없어 완
                                                                 천이 되고 있다.
                                                                                                                                        은 1866년 출판 당시 러시아 문단에서 가장 많이 논란이 된 작품이다.           전범죄로 이어졌으나 이상하게도 그 청년은 계속 예상치 않았던 불안
                                                                                                                                                                                           과 정신적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게 된다. 그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행동
                                                                 1865년 상인의 아들로 분리파 교도인 게라심 치스토프는 여주인 집을
                                                                                                                                        줄거리                                                은 이 사건을 맡은 뽀르피리 라는 노련한 형사로부터 예리하면서도 끈
                                                                 털기 위해 그녀의 세탁부와 요리사 노파 두 명을 살해해 기소됐다. 아파
                                                                                                                                                                                           질긴 유도신문을 받게 된다. 동시에 그 청년은 돈으로 자신의 여동생을
                                                                 트에는 온통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철제 상자에 들어 있던 황금 보
                                                                                                                                        19세기 러시아의 뻬쩨부르그 라는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끔찍한 도끼              가지려는 루진과 욕정의 화신 스비드가일로프 라는 비열한들과 신경
                                                                 석들이 도난당했다. 희생자들은 똑같이 도끼로 살해됐다.
                                                                                                                                        살인사건 이 발생한다. 그 도시에는 라스콜리니코프 라는 23세의 젊은             전을 벌이고 그 외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들로 인해 그는 거의 병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대학을 휴학한 상태에              적인 실신상태에 이르게 된다.
                                                                 많은 비평가들은 실제 범죄 기록에서 가져온 바로 이야기가 표도르 도
                                                                                                                                        있는 준수한 청년이었다. 다만 유난히 가난했기에 그는 마치 관을 연상
                                                                 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토대를 이룬다고 평가한다. 독일 작가
                                                                                                                                        케 하는 작은 다락방을 하나 세를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이때에 그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난다. 바로 그가 술집에서 알게
                                                                 헤르만 헤세는 도스토옙스키가 세계사 한 시대 전체의 이미지를 ‘죄와
                                                                                                                                                                                           된 마르멜라도프 라는 술주정뱅이의 딸 쏘냐 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벌’에 담아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자기 스스로도 확신하고 분석하기 힘든              쏘냐 라는 여인은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폐병환자인 어머니 그리고 어
                                                                                                                                        그 시기의 복잡하고도 난해한 사상(思想) 에 심취하여 고리대금을 하는             린 동생들의 생계를 위해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버
                                                                 ‘죄와 벌’은 연극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죄와 벌’ 을 각색한 연극들
                                                                                                                                        노파와 그 현장에 영문도 모르고 불쑥 뛰어든 유일한 목격자인 그 노파             는 천한 매춘부 였다. 이러한 만남은 바로 살인자와 매춘부의 만남이
                                                                 이 전 유럽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가장 중요한 연극 가운데 하
                                                                                                                                                                                           었다. 라스콜리니코프 라는 청년은 이 쏘냐 의 방에 두 번 방문을 하게
                                                                 나는 1888년 프랑스 파리 ‘오데온’ 극장에서 상연된 폴 지니스티(Paul
                                                                                                                                                                                           된다. 첫 번째 방문에서 살인자는 매춘부에게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
                                                                 Ginisty)의 작품이었다.
                                                                                                                                                                                           의 부활사건 을 읽어달라고 요청을 하고 매춘부는 살인자에게 그 성경
                                                                                                                                                                                           말씀을 읽어 준다.
                                                                 ‘죄와 벌’은 영화로도 수 십 차례 각색됐다. ‘죄와 벌’을 각색한 최초의 영
                                                                 화는 이미 1909년 러시아 제국에서 만들어졌다. 가장 성공적인 영화
                                                                                                                                                                                           그때 살인자는 매춘부의 다리 밑에 무릎을 꿇고서 “나는 이세상의 모든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은                              는 소련 영화감독 레프 쿨리자노프의 작품(1969년)이었다.
                                                                                                                                                                                           고통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두 번째 방문에
                            이성이 아니라                                                                                                                                                        서 살인자는 매춘부에게 자신의 살인범죄를 고백하게 되고 이때는 반
                                                                 2016년 모스크바에서는 뮤지컬 ‘죄와 벌’이 상연됐고, 런던에서는 ‘죄
                              희망이며,                              와 벌’이 록뮤지컬로 재해석됐다.                                                                                                        대로 매춘부가 살인자의 무릎 아래 꿇어앉아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뇌가 아니라                                                                                                                                                        불행한 사람입니다!” 라는 말을 남기며 자수를 촉구하게 되고 그 살인
                                                                                                                                                                                           자의 목에 자신의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준다.
                              심장이다.                              유형에서 잉태된 소설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그의 범죄가 확인되기 전에 자수를 하게 되고
                                                                 도스토옙스키는 비평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비사리온 벨린스키의 금지
                                                                                                                                                                                           시베리아 감옥에서 8년의 유형생활을 하게 된다. 이 청년은 이때까지
                                                                 된 편지를 유포한 죄로 4년간(1850-54년) 시베리아 유형을 살았다. 도
                                                                                                                                                                                           도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견디지 못하고 자수를 택한 나
                                                                 스토옙스키는 이 시기의 끔찍한 상황을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묘
                                                                                                                                                                                           약한 자신을 저주하며 감옥생활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살인자에게 끝
                                                                 사했다. 이 시기는 작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스토옙스키는 만연하는
                                                                                                                                                                                           까지 부활과 갱생의 원동력이 되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매춘부 쏘
                                                                 빈곤과 창궐하는 범죄, 알코올 중독 등 당대의 ‘질병’을 뼈저리게 느끼
                                                                                                                                                                                           냐이다. 그녀는 시베리아의 감옥까지 라스코리니코프를 따라가 그에
                                                                 고 이것을 작품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고 싶었다.
                                                                                                                                                                                           게 정성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해 보
                                                                                                                                                                                           인다. 결국 살인자는 감옥에서 성경을 읽고 ‘후회’ 가 아닌 ‘회개’ 에 이
                                                                 하지만 작가는 오랫동안 구상해 온 작품에 착수하려고 할 때마다 뭔가
                                                                                                                                                                                           르러 새로운 부활과 갱생의 삶을 계획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
                                                                 에 방해를 받았다. 도스토옙스키는 끊임없이 재정난에 시달린 나머지
                                                                                                                                                                                           기서 끝이 난다.
                                                                 몇 푼이라도 벌려고 유상계약 기간까지 서둘러 작품들을 써야만 했다.




             54   Korus Silver Club                                                                                                                                                                                      Korus Silver Club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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