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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었던  모양이다.  예수를  믿고  싶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온  것이다.  성경을
               주기적으로  읽을  것,  아직은  예수  믿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할  것  등을  당부였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개종을  시도하다가  자칫  집안  식구들과  큰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처신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몇  개월  동안  아주머니와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행복했다.  그  아주머니가  이제  예수를  믿으니  무슬림에  관한  책자가  더  이상  필요  없다며  한
               보따리를  싸서  이슬람의  몰라에게  가져다  주면서,  걱정하던  문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  상황에
               놀란  몰라가  예수를  믿으면  집안  자손  대대로  저주를  받아  죽게  된다는  얘기를  했고,  그  말에
               두려움을 느낀  아주머니는 다시는  예수를 믿지  않겠다며  성경을 돌려주겠다고 연락해왔다.
               그렇다.  무슬림들에게  전도하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모임에  오는  모든  식구들에게  나와
               가족은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성을  다했다.  병원비,  생활비,  가족문제,  교통비  등  그들은
               모든  것을  요구했고,  나는  끝없이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앞섰다.

               “언제까지 이들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말인가!”
               “아니지,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고,  바로  이것이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이 아닌가?”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인간적으로  도의적으로 너무한 것 아닌가!”
               컴퓨터학원  운영자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현실  속의  최웅섭과  선교사  최웅섭,  이  두  간극  사이를

               오가며  힘들었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숱한  시간  짜증이  솟구쳤다가도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다스렸고,  인내로  기다리다가도  순간순간  ‘이건  아니다’  싶은  화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물론,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과  함께  사셨고  같이  하셨다.  당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주셨으니
               어떤  더  할  말이  있겠나!  그  목숨  값으로  살고  있는  내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소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불만이  싹텄고  계속해서  이들을  돌봐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큰  고민과  짐으로  따라다녔다.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가정교회  성도들,  그들과
               언제까지 동거할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었다.

               컴퓨터학원으로  어느  자매가  찾아왔다.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전도할
               요량으로  무료로  가르쳐  주었다.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복음을  전할  기회가  와서  전도를
               했더니,  놀랍게도  할렐루야!  예수를  영접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분명  ‘사건’이라고  표현해야
               옳고, 영접이  ‘터졌다’라고  해야  맞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복음을 제시했는데, 정말  스폰지에 물
               스며들듯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선교사의  맛이,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준비해놓고는  이렇게  힘이  나게  하는구나,  생각했다.  학원에서  갖는  예배모임에

               남자친구도  데리고 와서  같이  참석하기도 했다.
               모임을  통해  그  자매의  가정에  대하여  깊이  알게  되었는데,  가정에  엄청난  고난이  있었다.  생활은
               가난하기  그지없고,  오빠  둘  모두  감옥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국영  석유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급여가  얼마  되지  않아  생활수준이  형편  없었다.  자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열과  성의를  다해  도와주며  가족처럼  지냈다.  하지만  도움의  요청은  끝이  없었고,
               자매의  엄마까지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자매가  신혼살림을  차렸다고  해서  월셋방에
               방문해보니  헛간  같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구와  기본적인  살림살이를  마련해

               주는  등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었다. 주님  아래 한  가족이니 그렇게 했다.
               이  자매뿐만이  아니었다.  모임에  오는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활해  나가기
               어려운  이들이었다.  단  한  번의  불평도  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며  같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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