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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기 100여 대를 가지고 있었고, 기숙사와 수위실을 갖춘 200여 명 규모의 사업체로 발돋움하였다.
                  당시 공업물로는 직조 및 편조물, 요업제품, 금속제품, 포백제품 등이고, 조선 제지류와 유기·기와
                                                                                                                 107
                  제조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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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수원은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경부선 철도의 부설과 권업모범장 설치는 수원의

                  변화를 이끌어 나갔다. 경부선 부설로 삼남의 물자가 집산하는 물류허브로써 기능하기 시작했고, 권                                           · 경제
                  업모범장 설립으로 축만제 주변의 둔전들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일본인들의 농업 이민이 확산되어                                              /  보건

                  1930년대에는 3,400명이 거주했다. 1931년 수원과 여주를 잇는 수여선이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쌀 반                                     · 환경위생
                  출이 시작되었고, 1937년 수원과 인천을 관통하는 수인선 개통을 통해서 염전에서 소금을 반출해 나

                  갔다. 수인선 개통으로 화성 지역에 간이역이 생겼고, 이로 인해 인적·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져 갔
                  다. 9)                                                                                           · 사회복지

                    이처럼 수원의 변화는 철도교통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실제로 수원역을 중심으로 핵심상업 지역이
                  발전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수원역은 근대도시의 상징인 철도역으로 시작하여, 교통, 상업의                                            /  사법

                  거점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 치안
                    우리나라의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제물포간 경인선 33.2km 구간을 임시개통하는 것을

                  시작으로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1931년 장항선, 1942년 중앙선이                                · 소방
                  개통하여 철도망이 갖춰졌다. 수원역은 1905년 1월1일 경부선이 개통하며 문을 열었고 1930년 12월                                      · 언론

                  1일 수여선(수원~여주 간), 1937년 8월6일 수인선(수원~인천 간)이 개통되었다. 수여선과 수인선은
                  경부선 수원역과 함께 수원에서 중요한 노선이었다. 수인선은 인천 송도와 수원을 잇는 협궤철도선

                  으로 총길이 57km이다. 본래 경기만의 소래, 남동, 군자 등의 염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
                  기 위하여 1935년 9월 23일에 착공하여 1937년 8월 6일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의 사설철도로 건설되

                  었으나, 해방 후 국유화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여선(수원-여주간 철도, 1972년 폐선)을 인천항까
                  지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10)

                    수원의 번성은 철도교통과 연관이 있어 수원역을 중심으로 핵심상업 지역이 발전했다. 수원에는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수원 화성 북문(문안)장, 남문(문밖)장, 오산장이 있었다. 수원 남문 밖의 장은

                  현재의 영동시장으로 알려져 있고, 북문 밖의 장은 위치가 불명확하나 19세기 중후반에 소멸하였고,
                  1904년에는 새롭게 성안장이 생겨났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905년 개통한 경부선이 수원을 지나가고 1930년 개통한 수여선, 1937년 개통한 수인선이 수원역
                  을 기점으로 하면서, 서해안의 소금과 해산물과 여주 일대의 쌀이 수원을 경유하게 된다. 철도의 건

                  설은 수원을 물류와 경제의 중심으로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1911년부터는 신작로 개설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져 우마차의 사용도 많아져 수원장과 오산장은 더욱 활기를 띄었다. 하지만 물류 일

                  부가 안성에서 수원을 거치지 않고 평택으로 빠져나가고, 수여선의 연결과 육로 운송의 발달로 수원





                  8)  『화성시사 9』, 29쪽.
                  9)  『화성시사 9』, 31쪽.

                  10) 최호진, 『경기천년 근대문화유산 답사 시리즈- 수원역, 과거와 현재 (1)』, 경기문화재단,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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