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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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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  조  23년(940)        태조 왕건이 남쪽을 정벌하러 갈 때 수성군의 김칠(金七)·최승규(崔承珪)                                 /  사진으로
                                          등이 자기 휘하 세력 200여 명을 이끌고 귀순하여 힘을 다한 공으로
                                          수주(水州)로 승격
                                                                                                                    보는
                    성  종    2년(983)       수주가 양주목(楊州牧)에 속하다.                                                        오산


                          10년(991)        수주의 별호를 한남(漢南)·수성(隨城)으로 정하다.


                          14년(995)        수주가 관내도(關內道)에 내속되다.
                                          수주에 최초의 외관(外官)인 도단련사(都團練使)를 설치하다.



                    목  종    8년(1005)      수주도단련사를 폐지하다.


                    현  종    9년(1018)      지수주사(知水州使)를 배치하고, 아울러 안산현(安山縣)·진위현(振威縣)
                                          ·쌍부현(雙阜縣)·용성현(龍城縣)·영신현(永新縣)·정송현(貞松縣)을
                                          속현으로 두다.


                    문  종  21년(1067)       수주가 남경에 영속되다.


                          23년(1069)       수주가 경기(京畿)에 속하다.


                    예  종    1년(1106)      수주가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에 내속되다,


                    고  종    4년(1217)      수주의 속현인 진위현에서 영동정(永同正) 이장태와 직장동정(直長同正)
                                          이당필(李唐必)이 거란의 침입을 틈타 같은 현의 별장동정(別將同正)
                                          김예(金禮) 등과 반란을 도모, 고종이 낭장 권득제와 산원 김광계 등을
                                          보내 안찰사 최박과 함께 광주·수주의 군사를 동원하여 반란군을
                                          공격했으나 실패, 충청·양주도의 군사를 징발하여 재차 공격하여

                                          이당필·김예·이장태 등을 체포하여 처형


                          19년(1232)       수주의 속현인 처인성에서 부곡민(部曲民)들이 승 김윤후(金允候)의 지휘로
                                          대항몽 전개하여 적장 살리타이(撒禮塔) 사살


                    원  종  12년(1271)       착량(窄梁)에 방수(防戍)하던 몽고군이 대부도에 들어가서 노략질하자
                                          섬사람들이 몽고군사 5명을 죽이고 폭동을 일으키자 부사(副使)
                                          안열(安悅)이 군사를 이끌고 평정하여 그 공으로 수주를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로 승격하고, 뒤에 다시 수주목(水州牧)으로 승격.
                                          수원향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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