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7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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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봉암은 자신의 단체를 위해 3백50만 엔에 달하는 자금을 청구한다.
             그는 한국에 막대한 피해를 준 극좌파와 싸우기 위해 그가 계획하고

             있는 좌익 신문을 발간하기를 원한다.

           8.  조봉암은 그가 이끄는 그룹이 ‘입법의원’에 초청될 경우 그에 참여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주저함을 표명했다. 그는 한국 국민들은 입법의

             회가 실권이 없는 오직 군정에 부속된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한다. 조
             봉암은 제2조 내용의 언어가 왜곡되어 ‘입법의원’이 자문위원회의 성

             격에서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조봉암은 입법의원의 임

             무를 규정한 5조는 명확하고 구체적이라는 데 동의했지만, 그는 한국

             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2조의 문구에 의해 무효화 되었다고 주장했다.

           9.  떠나는 자리에서 조봉암은 자기의 그룹이 급진좌파를 극복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코민테른 공산주의로부터 벗

             어나 좌파들을 재교육시키기로 한 것에 동의했다. 한 가지 어려운 점

             은 많은 좌파들이 박헌영에게 휘둘리고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생각 없이 코민테른 노선을 따라간다는 데 있다고 조봉암은 말했다.
             그는 이 사람들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온건노선으로 선회하도록 가

             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주: 조봉암은 모스크바 대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6월 박헌영의 정책을 비판한 편지를 출
              판하여 당에서 제명(출당 처분)되기 전까지 공산당과 민주주의민족전선 인천지구에서 두
              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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