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일산 그리스도의 교회 60주년사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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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를 매우 상세히 담고 있어 놀라울 정도다.                                                                                   로 하고 있다. 1990년도는 “지경을 넓히는 교회”, 1991년은 “믿음 위

                                     주보표지와 예배 안내가 2쪽, 전 주가 아닌 당일 주일 말씀 기록이                                                                    에 건축하는 교회”, 1993년은 “주님과 함께 전진하는 교회”, 1994년은
    제                              3쪽, 주일 낮 예배순서 1쪽, 저녁예배 및 수요예배 순서 1쪽, 어린이                                                                   “드디어 성전 건축의 해’로 정하여 그 뜻을 이루는 해가 되었다.
   3 장                             교회학교와 학생회 예배순서 1쪽, 교회소식 1쪽, 교구활동 1쪽, 그리

      노 진 량
                                   스도의교회 안내 2쪽 등으로 총 12쪽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 소식

     시 대                           란에는 장년부, 어린이학교, 학생회, 청년회별로 소상하게 소식들이                                                                       다. 찬양 사역
                                   기록되어 있어 각각의 교회 학교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았다는 사

                                   실을 실감하게 된다.                                                                                                         1980년 우리 교회가 노량진으로 이주한 뒤 가장 눈에 띠는
                                     강순혁 담임 목사는 부흥강사 출신으로 성도들에게 매사 기도를 강                                                                            변화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송을 부르고 성가대를 조직하

                                   조하며 본을 보이셨다. 금요 기도회는 성도들이 밤 11시에 시작하여                                                                            여 예배 때 특별 찬양을 드렸다는 점이다. 초기 북아현동 시대
                                   다음날 오전까지 드리는 철야기도회가 되었고 새벽예배는 매일 새벽                                                                              (1962~1980)엔 예배드릴 때 악기를 쓰지 않고 음성으로만 찬

                                   5시부터 한 주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드렸다. 담임목사의 기도에                                                                             송을 불렀으며 성가대 조직도 없었다.
                                   대한 열정과 이웃주민 성도들의 새벽기도와 금요기도회 참석이 많아                                               노량진시대 성가대(동절기)                    그리스도의교회 전통으로 내려왔던 무악기 찬송이 악기를 사

                                   짐으로써 노량진 교회는 기도로 든든히 세워지는 교회로 성장해갔다.                                                                             용하는 찬양으로 바뀌게 된 동기는 노량진 이주 후 타 교단에서
                                     노량진으로 이전 후 초기엔 연도별 표어가 없다가 1983년 최제봉                                                                           온 성도 수 증가와 젊은 층인 학생과 청년들의 영향력이 컸기 때

                                   목사 부임 후부터 성도들의 신앙과 교회 성장을 위한 목표 구현의 일                                                                            문이다. 몇 분 제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대 강순혁 목사는 운
                                   환으로 성경말씀에 의거하여 연도별 표어를 설정하였다. 강순혁 목                                                                              영위원회를 열어 악기 사용 문제를 심층적으로 거론하며 “하나

                                   사 재임기간에는 연도별이 아닌 월별로 목표를 정해 실시했다. 1982                                                                           님께 영광 올리는 찬양을 온 성도가 기쁘게 부른다면 하나님이
                                   년도를 예로 들면 1월 소명의 달, 2월 부흥의 달, 3월 전도의 달, 4월                                        노량진시대 성가대(하절기)                 더 기뻐하실 거라고 확신한다”며 악기 사용에 대한 안건을 제시

                                   승리의 달, 5월 가정의 달, 6월 전도의 달, 7월 교육의 달, 8월 수양의                                                                      했다. 이에 대해 운영위원의 동의를 얻어 결정을 보게 된 것이다.
                                   달, 9월과 10월 전도의 달, 11월 감사의 달, 12월 평가와 계획의 달이                                                                         아울러 성가대도 조직하여 예배에 성가대 찬양도 처음 실시

                                   었다. 1년 중 전도의 달이 4개월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새로 이사한                                                                          하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예배 인도자가 내는 찬송가 음이 제
                                   지역에서의 영혼구원에 총력을 기울인 목회사역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이고 성도들은 인도자의 찬양에 맞추어 소리를 내야 하니

                                     최제봉 목사 부임 후 교회 표어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989                                                                        불안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음폭과
                                   년도까지는 노량진 시대의 지속적인 교회 성장과 성도들의 신앙생활                                               우리 교회가 개최한 서울지역교회 성가경연대회       음정 박자가 불안한 찬송 때문에 교회에 등록했다가 다른 교회
                                                                                                                     (1986.10)
                                   을 견고케 하는 목표였으며, 일산으로 이사하기 전까지인 1994년까지                                                                           로 이전하는 사례를 적지 않게 보아왔던 것이다.
                                   는 지경을 넓히는 교회 건축에 포인트를 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첫 성가대는 1982년에 시작되었다. 교육전도자였던 정기원 목사(현

                                   를테면 1983년도 표어는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자’, 1985년도 ‘배우                                                                 하늘정원교회 담임목사)가 지휘자 겸 성가대장으로 성가대 조직을 이
                                   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1988년도 ‘주가지로 사는 교회’, 1989년도 ‘나                                                              끌었고 피아노 반주는 조미영 학생(박정희 권사 장녀)이 맡았다. 성부

                                   누면서 성장하는 교회’ 였다. 교회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보다 넓은 예                                                                     는 4개 파트로 소프라노 6명, 앨토 4명, 테너 4명, 베이스 5명 총 20명
                                   배당이 필요했던 1990년 초기엔 다음과 같은 표어로 교회 이전을 목표                                                                    의 성가대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성가대원으로는 연령 구별없이 학


           178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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