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일산교회 60주년사 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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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목사 가정 허영선 자매는 정히건 전도자가 운영하는 바울성서신학교를 다니
며 신학을 정식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뒤 대한기독교신학교까지
제
2 장 우리 교회가 창립될 무렵 즈음에 공삼열 전도자가 세들어 살고 있 졸업하고 목회사역을 시작했다.
동 아 현
북 던 집에는 갓 스물 된 딸이 하나 있었다. 허영선, 이름처럼 아름다운 남동생인 허승배와 허장도 자라서 목회자의 길로 갔다. 허승배는
그녀에게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쉽사리 말할 수 없는 병이 하나 깊이 초등학교 때부터 북아현동 교회에 출석하다가 그리스도 대학을 졸업
숨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경기가 심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내다 의 했다. 고강 그리스도의교회 개척을 도왔고 나중에 전남 영암 그리스
시 대
사의 진찰을 받고 본인은 물론 온 집안이 큰 놀라움과 함께 깊은 슬픔 도의교회에서 10년 동안 농촌목회를 했다. 그의 장남도 충남 아산에
에 잠겨 버린다. 서 현재 목회자로 사역을 하고 있다. 허승배의 동생 허장도 목회자가
허영선 목사
“어렵네요. 이게 심해지면 간질로 발병할 수 있어요... 현재의 의술 되었다. 막내인 허 베드로는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로는 별다른 치료법은 없어요....” 허영선 목사는 양천구 신월동에서 목회를 했으며, 현재 미국 켈리
지금도 이런 증례에 대한 이런 진단은 대단히 무섭고 큰 충격을 안 포니아 주립재학에 근무하는 장남을 따라서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겨준다. 하물며 60년 전에야... 결혼도 할 수 없고 사회생활도 할 수 미국에 가자마자 그 당시 로스엔젤리스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서
없이 본인은 폐인 취급을 받고 집안은 패가망신할 수 있었다. 그런 허 영복 권사님을 만나 병간호를 하며 함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서 권
영선 자매에게 막 북아현동그리스도의교회를 창립한 공삼열 전도자 사님은 바로 남편인 윤병련 장로님이 교통사고로 소천하셨을 때 받은
는 본격적인 ‘치유의 은사’를 베푸시기 시작한다. 공 전도자는 예수 보험금 1천만원을 교회의 건축헌금으로 내서 우리 교회의 발전에 크
그리스도의 말씀과 치유의 사역을 전하며 허영선 자매와 가정에 ‘나 나큰 기여를 한 분이시다. 허영선 자매는 북아현동 시절 서 권사님을
음’과 ‘은혜’의 확신을 불어넣어주셨다. 친언니 이상으로 따르며 절친한 사이로 지냈다.
허 자매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공 전도자님을 따랐다.
“오, 주님. 저를 낫게 해주시면 평생을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겠습
니다!” 안점석 장로 가정
그녀는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전도자님을 따라 은혜롭다는 기도원
은 기도원 대로 찾아가고, 부흥회는 부흥회마다 참석했다. 백납병이 안점석 장로는 1963년 초부터 2022년 현재까지 우리 교
라는 피부가 하얗게 되는 난치병을 앓고 있던 동생 허승배도 함께 기 회를 나오시며 100세를 넘기셨다. 우리 교회 60년 역사의
도회를 쫒아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허영선과 허승배 남매는 나음을 가장 모범적인 산 증인이시자, 나아가 우리 교회를 향한 하
받았다. 당시의 의학과 의술이 할 수 없던 일이 우리 교회에서 치유의 나님의 높고 깊은 사랑을 우리 모두가 다시금 되새기도록
은사로 구현된 것이다. 이끄신 분이시다.
그 뒤 허영선 자매의 삶은 온전한 교회에의 봉사와 헌신으로 이어 안 장로는 공삼열 전도자의 친척으로 처음 교회에 초청
진다. 아직 전도팀이 제대로 갖춰주기 전, 자매는 공 전도자을 쫒아 북아현동 시대의 안점석 장로와 김점순 권사 받아 참석하셨고 곧바로 우리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하셨
지역 전도와 심방 사역에 앞장서 나섰다. 어린이들을 교회에 모이게 다. 그해 4월에 침례를 받고, 1966년 1월에 민영윤 집사 등 다른 3분
하여 교회학교를 시작하는 데 기여하고, 스스로는 교회 반사가 되어 과 함께 우리교회 최초의 집사로 임직 받으셨고, 1974년 우리 교회 최
사역했다. 초로 장로 장립을 받으셨다.
122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