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일산교회 60주년사 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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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서 권사는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됐다.                                                                     그리스도의교회는 부모님이 대구에 계실 때에 세들어 사시는 분의 소개로

                                                      윤 장로는 애초 신앙의 자유를 위해 월남했기에                                                                대구그리스도의교회 임봉수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임목사님과 성경공부
    제                                                                                                                                          를 통해 세례를 이미 받았지만
   2 장                                              이북 출신이 많이 다니던 영락교회에 매우 강한 애
    동 아 현
      북                                             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인인 서 권사의 간                                                                성경대로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의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아버
                                                    곡한 권유로 당시 개척교회 수준이던 우리교회에                                                                  님께 핍박을 받았으나 결국 아버님도 침례를 받으시고 그리스도의교회 교

                                                    등록하기에 이른다. 나중에 그는 우리 교회 초대                                                                 인이 되었고 서울로 올라와서 북아현동 그리스도의교회를 다니게 됩니다.
     시 대
                                                    장로로 장립되셨다.                                                                                 북아현동 교회가 처음에는 굴레방다리 날신사(양복점) 옆의 이층에서 시

           윤병련 장로와 서영복 권사의 생전의 모습                     서 권사는 창립 초기 아직 여전도사가 없을 때                                                                작되었고 저도 거기서 예배드리던 기억이 납니다.
                                   구역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어려운 가정을 돌보며 전도에 힘썼다.                                                                          방영순 권사님과 상숙 자매도 그때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슬하의 4남매 모두 우리 교회학교를 거쳐 신앙을 키워나갔다. 장남
                                   윤상욱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좋은 직장을 가졌으나 주님의 일꾼으로

                                   사역을 하고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다. 그는 북아현동시대에                                                                        이운호 장로 가정
                                   교회 후배인 조상숙과 결혼하여 초대 교회 커플을 이루는 계기가 되

                                   기도 했다. 지금은 미국 글렌데일 그리스도의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                                                                                         이운호 장로 가정이 주님을 받아들인 이야기는
                                   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그리스도의교회답다”

                                     장녀 윤은순의 남편인 김영일은 결혼하자마자 부인을 따라 우리 교                                                                                      는 느낌을 준다. 앞서 우리 교회의 초기 전도방식의
                                   회에 등록했다. 나중에 집사 임직을 받으며 제직으로서의 역할을 잘                                                                                       특징 2가지 가운데 하나로 ‘어린 자녀로부터 부모

                                   감당했다. 서영복 권사의 동생인 서영수 집사와 자녀들도 노량진 교                                                                                       로 나아간다’는 분석을 한 바 있는데, 어쩌면 이리
                                   회 충직한 일꾼으로 교회 봉사와 성장을 많이 도왔다.                                                                                              도 잘 들어맞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것도 어린 자녀

                                     특히 윤병련 장로는 갑작스러운 소천을 통해서도 오로지 우리 교회                                             이운호 장로(오른쪽에서 세번째)의 장로 장립 때 가족과 함께한 사진    가 스스로 우리 교회를 찾아와 먼저 그리스도를 영
                                   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증거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뤄내셨다. 당시 교                                                                      접한 뒤 다시 스스로 어머니를 그리스도 앞으로 모시고 나오는 아름

                                   통사고로 돌아가셔서 받게 된 생명보험금 일천만원이라는 매우 크나                                                                        다운 스토리인지라 참으로 아름답고도 은혜롭기만 하다.
                                   큰 거금을 남은 가족들이 우리 교회의 발전을 위해 전액 헌금하시는                                                                         이운호 장로-이지연 권사 가정의 장녀 이춘희 양이 창립한 지 얼마

                                   놀라운 결심을 하신 것이다. 이 소중한 재원이 우리 교회를 노량진으                                                                      지나지 않은 4평짜리 하꼬방의 우리 교회를 스스로 찾은 때는 중학교
                                   로 발전적으로 옮겨가는 성장의 큰 역사, 큰 걸음을 가능토록 했다.                                                                      1학년 때였다. 서울 북아현동 굴레방다리에서 이대 입구의 대현동으

                                     윤장로 소천 뒤 온가족이 미국 이민의 길을 가게 되었다.                                                                          로 넘어가는 언덕의 푹 파진 곳의 비탈에 있는 하꼬방의 예배당에서
                                                                                                                                              울려나오는 찬송가 소리에 저절로 끌려 어린 소녀가 교회문을 스스로

                                     다음은 장남인 윤상욱 목사가부모님에 대한 소회를 표현한 글이다.                                                                      열고 들어간 것이다. 우리 교회와 전도자님의 말씀이 좋았던 소녀는
                                                                                                                                              다시 어머니까지 교회로 모시고 온다.
                                    저희 부모님은 이북 평안도 의주가 고향이고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                                                                      “엄마, 교회에 같이 가서 그냥 들어보세요. 혹시라도 교회가 좋지

                                    시다가 월남하셔서 영락교회를 다니셨습니다.                                                                                   않고 나쁜 데라면 나도 안 다니겠어요.” 이 당돌하면서도 듬직한 딸의


           126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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