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일산교회 60주년사 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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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주님의 은총 아래 결국 온 식구를 교회로 나오도록 이끌어낸                 남편 정수만 집사가 교회 참석을 반대하여 심지

 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들어온 것이다. 딸             어는 술 취한 채로 교회에 들어와 훼방을 놓기도 했
 제
 2 장  은 교회 학생회의 첫 멤버가 되고 1962년 7월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     다. 하지만 그럴수록 교회에 매진하며 신앙을 키우
 동 아 현
    북  인 이지연 권사는 1973년에 집사 임직하고, 1988년에 권사로 취임했    셨다. 나중에 그러던 남편도 안점석 장로와 가까워
 다. 우리 교회 여선교회 회장과 임원을 역임하며 교회 봉사에 앞장섰             지면서 결국 교회에 출석을 하시게 된다.

 고 그리스도의교회 여선교회 연합회 임원으로 지방의 어려운 교회를                  김 권사는 공삼열 전도자와 함께 자주 교인들 심
   시 대
 돌보는 등 봉사를 많이 하셨다. 남편인 이운호 장로는 운수업에 종사  설날 가정예배 후 함께한 가족 사진 (2005년)   방과 전도를 다니며 교회일을 도우셨다. 심지어 어

 하는 관계로 다소 늦게 교회에 입문했다. 1980년 1월에 집사로 임직  린 아기를 업은 채로 산비탈 골목길을 돌고돌아 올라가는 심방길도
 하고, 1988년 3월에 장로로 장립됐다. 1980년 노량진으로 이전을 하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공삼열 전도자는 증언하신다.                 37)

 게 되자, 그 때부터 성도 수송용 대형버스의 운전기사로 봉사하셨다.   김권사는 허옥준 권사와 함께 첫 집사 임직자가 되시고 나중에 구
 또한 고선곤 장로 가정을 비롯하여 이웃에 사는 여러 분을 전도해 교  역장을 맡아 구역원을 돌보고 섬기셨다. 교회의 크고 작은 대내외 행

 회로 모셨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에는 아예 교회로 출근해 교회 일을   사에 적극 참여하고 믿음의 공동체 생활의 본을 보이셨다.
 보살피셨다. 일산으로 이주한 이후부터는 셔틀버스를 운행하시며 성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찬양을 많이 하신 것으로도 유명하다. ‘만

 도들의 발이 되어주셨다. 차량 정비 도중 고혈압으로 쓰러지셔서 6년   입이 내게 있으면’,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찬송을 아주 좋아하셨다고
 동안 병상에 계시다가 2004년 1월1일에 소천하셨다. 1녀4남의 자녀   한다.

 가운데 차남 이춘근은 교회학교 시절부터 믿음생활을 하였고 아내와   김 권사는 늘상 가방에 과자류와 껌을 넣고 다니면서 버스 운전기
 함께 1991년 집사임직을 받았다. 막내 이춘용도 어릴 때부터 신앙생  사나 전도대상자로 만나는 사람에게 건네주며 “교회에 나오시라”고

 활을 하고 있으며, 부부(아내 : 이순자)가 2019년 안수집사와 권사 취  권면하고 다니셨다.
 임을 하였다. 딸 이정아는 우리 교회출신 복음성가 가수이며 사위 황  소천 전 약간의 치매증세가 있으셨지만 다정한 인사로 늘 성도님들

 정태는 우리 교회의 전도사를 거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을 마음 편하고 기쁘게 해주셨다. 사후 시신을 백병원에 기증하여 몸
 이지연 권사는 95세의 연세로 의정부에서 장녀 춘희 집사와 함께   까지도 남김없이 주고 가셨다.

 기거하고 있다.                            자녀들은 찬송가 199장 ‘나의 사랑하는 책’ 4절인 ‘그 때 일은 지나
                                   고 다만 눈에 환하오 어머님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때때로 성

                                   경 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합니다’ 라는 찬송으로 어머님의
 김정열 권사 가정                         유지를 받들고 살아가겠노라고 한다.              38)



 김 권사는 1962년 가을에 고향사람 (그 당시 김명복 청년의 어머  후손들에게 4대째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셔서 현재 아들 셋이 일산

 님)의 권유로 교회에 나오게 됐다. 충북 옥천 청산의 산골짜기 동네에  교회를 섬기고 있고 한 아들은 부평 창천교회 안수집사로 봉사를 하
 서 1961년 2월에 서울 북아현동 산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 전엔 불교

 에 전력하여 스님이 집에 자주 방문하여 아들을 절에 바치라고 할 정
                                   37) 공삼열 목사의 회고 - 당시 그 아기가 현재 정진기 장로임
 도였다고 한다.                          38) 김정열 권사 1921.06.14. ~ 2015.02.15. 정수만 집사 1919.04.03. ~ 1992.08.01


 128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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