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일산교회 60주년사 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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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송선옥 집사와 함께 심방 활동에도 열심히 동참하는 등 열성적 2. 북아현동 시대 목회사역의 중점 사항
으로 전도와 봉사활동을 하셨다. 먼저 조카인 정명진 집사를 인도하
제 가. 목회사역
2 장 여 교회 일꾼으로 봉사하게 한 데 이어 자녀들 모두 일산교회로 이끌
동 아 현
북 었다. 자녀인 정진영 장로, 정진면 성도, 정진기 장로 모두 뜨거운 믿
음의 가정을 이루고 있다. 1) 1960년대의 개척교회와 초대 목회자
서학실 권사는 우리 교회에 나오던 장남이 화재로 숨지는 바람에
시 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오게 됐다. 서 권사는 소 우리 교회의 개척은 이영진 전도자와 공삼열 전도자의 공동목회에
천 때까지 의정부에서 일산까지 우리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하셨다. 서 시작했다. 두 분의 목회사역은 사실 우리 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대
초기에 기억할 분으로 남궁달 장로도 빼놓을 수 없다. 근처 서대문 단히 중요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영진 전도자의
교회에서 봉사하시다가 개척교회를 돕는다는 마음에서 북아현동교회 경우는 본인은 물론 사모님도 소천하시고, 자녀들도 연락이 되지 않
북아현동 시대의 남궁달 장로 부부
로 적을 옮기시기까지 했다. 예배 봉사자와 구역예배 인도자로 봉사하 아 그 분에 대한 자료가 제대로 보존되거나 정리돼 있지 못한 상태이
시면서 신앙의 올곧은 삶을 보여주셨다. 1966년엔 안점석 장로와 함 다. 이에 제한적인 자료와 불충분한 추억에 의존해 의미있는 대목의
께 첫 임직인 집사 직분을 받으셨다. 당시 장녀와 장남도 함께 신앙생 일부나마 나름대로 정리해 전달할 수 밖에 없다. 참으로 죄송스럽고
활을 했으며 현재 심룻 선교사(본명은 남궁 순)의 아버님이시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초기에 이영진 전도자께서 영어성경을 지도하시고, 또한 교회에 학
생회 조직이 어느 정도 돌아가게 되면서 교회로 오는 학생들도 많이 이영진 전도자
17)
늘어났다. 어린이 교회학교에서도 김병진, 김원일, 정진영, 민혜진,
18)
허승배, 김영삼, 이상근, 김장열 등의 어린이들이 믿음의 새싹으로 자 이 전도자 는 사모님과 세 자녀를 두었다.(2남1녀) 딸은 교회를
라 나갔다. 처음 개척하던 해인 1962년 12월 19일에 안타깝게도 먼저 소천하였
KC대학교 뒷산(봉재산)을 산책하는
이영진 전도자. 다. 먼 친척이자 전쟁 고아인 이국모라고 하는 소년도 함께 마포구 용
강동 집에 살고 있었다.
이 전도자는 우리 교회 개척 전에 미국 유학을 다녀
왔다. 현 KC대학교의 전신인 그리스도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과 친분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 선교사들이 자주 우리 교회
에 오셔서 설교를 하시곤 했다. 19)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절기 때에는 미국 교회에
서 의류와 식품인 밀가루와 과자류를 선물로 보내왔
맨 오른쪽 이영진 전도자 사모(안점석 장로 부부와 함께)
17) 당시 참여 학생은 김명복, 이춘희(이운호 장로의 장녀), 민복남(허옥준 권사의 차 18) 그당시 목회 사역자를 전도자로 통칭하였다.
녀), 김정일(이춘례 권사의 장남), 이승학, 김영일, 이승우, 김승학 등이었다. 19) 오피베어드, 리철슨, 멜바 등의 선교사가 말씀을 전했다.
68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