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9 - 일산교회 60주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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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참석하여 신앙의 본을 보이시는 분으로 유명하다.     완성된 철필지를 등사판에 올리고 등사잉크를 부어 롤러를 회전시켜

 현재도 그리스도의교회 연합여선교회 회장을 맡아 여러 해째 봉사  압착해 글자를 인쇄하는 등사작업에 실수가 생기면 그야말로 ‘회복불
 제
 2 장  하고 있다.                       능’이 된다. 잉크가 모자라도 글자가 잘 안 나오고, 넘쳐도 글자가 너
 동 아 현
    북                              무 많은 잉크로 범벅이 돼 새까맣게 된다. 손이며 얼굴 옷까지 검정
 김병진 장로 가정                         등사잉크로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겨울 저녁 철필작업과 등

                                   사작업을 하는 것은 얼마나 춥고 떨렸던가! 김장로님의 에피소드를
   시 대
 김병진 장로는 우리교회 개척 당시 가장 먼저 ‘어       들어보자.

 린이 주일학교’에 입문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          “날씨가 아주 추웠던 겨울날, 토요일이었어요. 교회주보를 등사하
 다. 창립 즈음 공삼열 전도자가 펼치신 어린이 전도      기 위하여 교회에서 프린트 작업하면서 손이 너무 곱구...추워서 연탄

 의 첫 열매인 셈이다. 공 전도자님 바로 이웃에 살      난로를 피웠어요. 그러다가 목사님께 혼이 났어요. 그 때문에 상처받
 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세상의 참 진리를 듣고 단박      아 교회에 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서영복 권사님이 저를 찾아오

 에 이해하는 지혜를 어릴 때부터 받았던 때문은 아       셨어요. 그 때 저를 감싸주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때 심
 닐까?                               방을 받고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됐지요. 참,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김병진 장로, 이광숙 권사와 자녀들  원래 그는 어릴 때부터 내성적 성격이었다. 그러  그 당시 어려운 시절, 가난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여러 성도님들이
 던 그가 우리 교회의 ‘주일학교 동화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냈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야 했는지.. 그 모든 분들께 거듭

 다. 그뒤 주일학교 1년 선배인 송영분 양과 같이 KBS 방송국의 초등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된다.
 학교 프로그램에 출연하기까지 한다. 이를 계기로 내성적 성격이 적  김 장로는 학생회 시절 YMCA 범우회 클럽활동을 하면서 이광숙

 극적인 성격으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결단력과 자신감  권사를 전도하여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82년 1월3일에 부부가 같이
 이 생긴 것이다.                         우리 교회의 집사 임직을 받았다.

 그 뒤 소년은 이 교회의 중고등부, 청년회를 거쳐 감동적인 기도,
 믿음의 리더십으로 우리 교회의 듬직한 청년 일꾼으로 성장했다.   이 권사는 초신자 가정에 심방을 나가 전도하는 일을 많이 했다. 김

 김 장로는 학생회와 청년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우들 전도에 앞  장로는 사회생활(변리사)로 많이 바빠지자 특정 봉사부서 일보다는
 장섰다. 그렇게 밖으로부터 학생들을 우리 교회로 인도하는 데 심혈  수시로 일손이 필요한 부서의 일에 긴급하게 참여하는 별동대 같은

 을 기울였다. 또한 우리 교회의 주보 및 프린트물을 철필로 쓰고 등사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럴 때면 부부가 같이 나서곤 했다. 이와 함께 대
 하는 일에 많은 봉사를 하였다. 당시의 철필작업은 깊은 정성과 함께   표기도위원으로 오랫동안 봉사했다. 그의 대표기도는 뜨거운 열정과

 대단한 정신 집중을 해야만 하는 상당한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오늘  깊은 통찰로 많은 성도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날처럼 컴퓨터나 핸드펀의 자판처럼 할 때 오타가 나면 ‘delute’를 치  김 장로님은 2006년 우리 교회의 장로 장립을 받았다.

 면 지워지고 바로 다시 치면 되는 게 아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쓰면 그   나중에 김 장로는 변리사 특허법인을 강남쪽에 열게 되자 거주지도
 글자를 지워도 그 자국이 지저분하게 그대로 등사돼 인쇄물이 돼버렸  옮겨야 했지만, 먼 거리에도 우리 교회의 예배를 계속 드렸다. 그러다

 다. 그러니 얼마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철  가 운전하는 것이 힘들어지게 되어 몇 년 전부터는 어쩔 수 없이 영동
 필작업을 간신히 탈없이 마쳤어도 더 무서운 ‘등사작업’이 남아 있다.   그리스도의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그래도 우리 교회의 주요 행사에는


 138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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