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6 - 일산교회 60주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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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고 없이 우리 모두를 리는 생겨났다.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가는 날 큰비가 몰아닥친 것이
지켜주셨다. 그 결과 수련회를 함께 한 사람들은 훨씬 더 친근해지고 다. 그 결과 육로를 통해 서울로 가는 교통편이 막혀버렸다. 우여곡
제
2 장 서로를 더 신뢰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우리 교회의 공동체는 더 성 절 끝에 그날 저녁에 만리포에서 인천항으로 가는 선박이 있다는 것
동 아 현
북 장하고 더 강인해졌다. 을 알게 됐다. 바로 그 배편을 이용하여 다음날 새벽에 인천항에 도착
제2회 수련회는 1972년 8월15일부터 19일까지 만리포 해수욕장 할 수 있었다. 당시는 전화통화도 어려운 시대였기에 와야 할 자녀들
인근에 있는 한 별장에서 청년회 회원만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기독 이 오지 않자 여러 집안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어떤 가정에서는 실
시 대
청년의 가치관’이라는 주제로 연 수련회이기 때문이다. 종신고까지 했다고 한다. 몸은 많이들 고달팠지만, 주님의 은혜를 저
1회 때와는 달리 2회 수련회 장소는 “럭셔리”라고 할 만했다. 허옥 마다 깊이 체험할 수 있는 더없이 감사한 시절이었다.
준 권사의 장남의 별장을 허락받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가 인원은 20명 정도로 추정된다, (당시 4개조로 각 조별 5명으
로 구성), 참가자 중에는 회원의 권유를 받아 새로 온 친구들이 여러 나. 체육활동
명 있었다. 덕분에 그들에게 전도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
다. 회비는 대학생은 2,000원, 직장인은 3,000원으로 했다. 그러나 전 북아현동 시대에 우리 교회 자체적으로 전교인 연합으로 실시하는
체 소요예상 경비에는 턱없이 모자라 직장인들은 훨씬 더 많이 별도 체육대회는 거의 없었다. 그 대신 그리스도의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
로 지원했다. 는 ‘연합배구대회’와 청소년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체육활동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서울에서 만리포까지 가려면 한 나절은 걸 그리스도의교회 연합배구대회는 ‘그리스도의교회 친선 배구대회’
렸다. 첫날 아침에 출발해서 오후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예배를 드 란 명칭으로 1964년 7월4일에 우리 교회가 처음 주관하여 효창 교회
렸다. 그리고 4박5일 일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회원들 에서 첫 대회가 열렸다. 우리 교회는 3위를 차지했다. 그후 계속해서
끼리 역할 분담을 해서 맡은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지어먹었다. 그 연합배구대회가 열려 우리 교회는 1965년과 1966년 연이어 우승컵
리고 모두 바닷가 해변으로 뛰어들었다. 회원 대다수는 바닷가에 처 을 거머쥐었다. 연합배구 시합은 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응원으로
음 와서 경험하는 터라 마음이 들뜬 상태였다. 이에 군기반장이 청년 교회 사랑의 힘을 키워주었다. 이와 함께 여러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
들을 한 곳에 모은 뒤 피티 체조를 실시했다. 이어서 안전 교육을 실 가 서로 교통하며 우의를 존독히 할 수 있었다.
시하고 나서야 밤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밤에는 조별 모임을 갖고 주 기록상 우리 교회에서의 체육활동은 1978년 3월 26일에 청장년 대
제토론을 했다. 대충 토론이 정리되자 다시 전체가 모여 종합발표 시 학생 간 친선체육대회가 KC대학교(전 그리스도대학교)에서 열린 것으
간을 가졌다. 그렇게 기독청년으로서의 신앙관을 굳건히 다져갔다. 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해 6월 6일에는 학생연합체육대회가 열렸다.
임봉수 담임 목사도 8월16일 우리 교회의 수요예배를 인도하신 후
다음날인 17일에 수련회 장소에 오셨다. 그 후부터는 담임 목사님께
서 아침, 점심, 저녁시간에 예배와 함께 특강을 해주셨다. 우리들이 다. 야외예배
기독청년으로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내용이
었다. 우리 교회는 창립 이후 매년 봄철에 어린이 주일학교와 장년부 야
1회 수련회 때도 물난리를 겪는 추억을 남겼는데, 2회 때도 추억거 외예배를 실시하였다. 교회 위치가 북아현동이어서 야외예배 장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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