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박광린 개인전 2025. 9. 26 – 10. 1 아트프라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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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태였다. 즉 순간이란 찰나의무엇이 아닌 과거와 미래가 현재 안에서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내적 경험으로만 존재한다. 그렇다
                   면 사진이 보여준다고 믿었던 ‘순간’은 무엇일까? 박광린은 사진이 내포한 시간을 하나의 고정된 순간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13
                   년 전 촬영한 과거의 작업부터 근래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사진에서 시간은 지속의 흐름 안에서 내적인 층위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때 사진은 “’이전’과 ‘이후’를 자신 안에 포함”함으로써,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나열하는 선형적인
                   시간으로부터 벗어난다. 2
                   이처럼 지속의 감각을 시각화하는 박광린은 일반적인 사진에서 간과되기 쉬운 시간의 다중적 차원을 드러내고, 관객으로 하여
                   금 내면의 시간을 직관하게 한다.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구상 사진과 달리, 박광린의 사진이 지닌 추상성은 의식 안에 흐
                   르는 지속으로서의 시간을 물질적으로 드러낸다.
                   의향(意向, imagery)적 표현 매체로서의 사진-회화
                   한편 박광린의 작품은 전적으로 사진이라는 매체에 기반하면서도 회화적 제스처를 통한 미적인 표현 의지를 보여준다. 즉 사진
                   기록 너머에 위치한 회화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참조한다. 이는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뿐 아니라 지지체의 측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박광린은 촬영한 사진을 종이나 광택지가 아닌 캔버스에 인화한다. 매끈한 인화지에 프린트된 이미지는 종종 그것이
                   몸담은 얇은 물성을 잊게 만들지만, 캔버스에 인화된 사진은 직조된 천의 질감과 프레임의 두께를 통해 보다 물리적인 존재감
                   을 획득한다. 사진 매체의 평면성에서 한 겹 벗어난 이미지는 응시의 대상이 아닌 마주하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물질적 잔류를
                   통해, 회화적 효과는 한층 더 증폭된다.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하고, 감각을 통해 사물의 본질과 이에 투영된 내적 의식을 환기하는 방식은 일종의 의향(意
                   向)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의향’이란 ‘마음이 향하는 바, 또는 무엇을 하는 생각’이라는 뜻으로, 박광린이 자신의 추상 사진에
                   투영하는 내적 사유의 층위를 가리킨다. 사진 내에서 작동하는 지속으로서의 시간과 그 흔적으로 어룽거리는 추상적 이미지는
                   작가의 상상력과 함의를 접촉면에 두고 맞닿아 있다. 따라서 “나에게 사진은 그림”과도 같은 것이라 말하는 박광린에게 ‘그림’이
                   란,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에 자신의 심상을 투사한 이미지일 것이다. 3  이는 다시 한번, 불현듯 마주한 낯섦, 우리와 우리 앞에 놓
                   인 풍경 사이의 거리 속에서 내면의 의식을 추동하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결국 저 멀리 있는 타(他)의 끝은 가장 깊은 자아, 존재
                   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 박광린은 구체와 추상, 낯섦과 익숙함, 사진과 회화의 양단에서 그러한 이치를 길어 올린다. 이 인식
                   의 여정은 순간에 그치지 않고 존재의 의식 안에서 지속될 것이다.
                   2. 베르그송, 같은 책, p.484.
                   3. 작가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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