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신현철 초대전 2022. 11. 2 – 11. 17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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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철, “보석을 만드는 손”
연파(連波) 신현철(申鉉哲, 19??~)은 한국의 차인들에게 흔히 “보석을 만드는 손”으로 불린다. 여러 종류의 다구
(茶具)와 달항아리를 비롯하여 그가 만든 작품들은 확실히 누구나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물건(物件)
들’임에 틀림없다.
선미(禪味)를 찾던 수련생 시절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옛날 청자에 물을 담아두면 썩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옛날 도자기를 처음 만났다. 대구에서 얼린 한 고미술품 전시
회장에서였다. 주최 측의 배려로 그날 고려백자에 살짝 입술을 대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부드럽고 따뜻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자신이 평생 매진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후 신현철은 윤광조 선생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도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만 1년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흙을
밟고 꼬박을 민 후에야 물레에 앉을 수 있었다. 이후 2년을 더 도자 수업에 매달렸다. 윤광조 선생은 월요일마다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며 이를 따라하게 했는데, 한 번도 그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직접 보여주지는 않으
셨다. 혼자 분석하고 연구하고 깨우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정까지 『육조단경』 등 불조(佛祖)에 관한 책
들을 많이 읽게 하셨다. 그가 불교의 상징인 연꽃과 관련된 다구를 여러 종 창안하고, 작품을 만들 때마다 선미(禪
味)를 우선하게 된 것은 모두 이 시절 공부의 영향이다.
<연잎 다기 세트>와 신현철의 등장
신현철이 도자기 수업에 몰두하던 1980년대 중반은 한국에서 막 다도 열풍이 불기 시작하던 무렵이기도 하다.
그 선두에는 역시 선방의 스님들이 있었는데, 바랑에서 커다란 일본식 다관을 꺼내어 작설차를 우려 드시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스님들의 바랑에 들어가기 딱 알맞은 크기에,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은 새로운 다기’를 만들고 싶
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왕실요의 고장인 경기도 광주에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도예 작업을 시작했다. ‘불교, 차(茶), 선
(禪), 스님의 바랑, 전통, 창작’ 등의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운 작품의 구상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은사 연
못가에 앉아 있다가 연잎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우치게 되었고, 거기서 새로운 작품의 모티프 하나를 발견하게 되
었다. 이후 3년의 연구, 실패와 성공이 교차하는 다양한 시험을 통해 완성된 것이 <연잎 다기 세트>다. 차 전문지
인 《다담(茶談)》지 1987년 11월호에 이 작품이 표지사진으로 소개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그를 찾
았다. 그만큼 당시 한국의 차인들은 새롭고 한국적인 다구, 전통과 현대가 하나로 어우러진 다구를 목마르게 기다
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열렬한 반응은 국내에서만 일었던 것도 아니다. 이 새롭고 독창적이며 아름답고
실용적인 다기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크게 호평을 받았다. 1988년 인사동에서 열린 개인전 때 일본의 차인들에게
처음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고, 2001년에는 중국 의흥에서 열린 국제도예전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이후 중
국의 4대 차박물관에 소장되었으며, 2008년에는 중국 사천성에 있는 중국관에 중국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초로
작품이 관 안에 소장되는 영광을 누렸다.
<연지>와 한국 차문화의 부흥
그렇게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신현철은 이후에도 쉬지 않고 매년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놀라
게 했다. 그의 작품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작품에서 변형되고 발전된 것이 아니었다. 아예 세상에 없던 것이 대부
분이었다. <연잎 다기 세트>도 그렇지만, <연지(蓮池)>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