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복진오 개인전 5. 25 – 5. 31 문화공간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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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 LOVE 1900x2440
스테인레스 스틸 2023
스테인리스스틸 띠를 엮는 방식이 불규칙적이고 비정형적이라고 했다. 이후 작가는 엮는 방식을 다르게 시도하
는데, 방법이 다른 만큼 형식이며 분위기 또한 다른 작업을 내놓고 있다. 이번에 띠를 엮는 방식은 규칙적이고 정
형적이다. 패턴이 두드러져 보이는데, 주지하다시피 패턴이 성립하기 위해선 하나의 모나드(단위원소)가 반복 확
장되는 모듈 구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격자구조가 반복되면서 패턴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겠고, 날실
과 씨실이 교직 되면서 직조되는 직물 구조를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방법이 정형화된 것인 만큼, 그 방법을 통
한 결과물 또한 마치 직물에서의 그것처럼 평면적인 화면으로 도출된다. 입체에서 평면으로 옮겨왔다고 해야 할
까. 회화적 평면이 강조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금속 띠 자체가 탄성을 가지고 있는 탓에 띠와 띠가 교
직 되는 접 면에 굴곡이 생기고 틈새가 드러나 보인다. 현저하게 평면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런 굴곡과 틈새로 인
해 화면은 섬세한(혹은 미세한) 저부조처럼 보인다. 그리고 작가는 일부 작업에서 화면 뒤에 LED를 장착해 조명
을 부가하는데, 굴곡진 틈새로 은근한 빛이 새 나오면서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조명이 있을 때
와 없을 때가 사뭇 다른, 감각 혹은 시각 경험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이런저런 오브제를 부가
하는데, 이로 인해 화면은 마치 회화에서의 그것과도 같은, 배경 화면이 된다. 물고기를 풀어놓으면 바다가 되고,
사자를 풀어놓으면 사파리가 되고, 나무를 풀어놓으면 숲이 되고, 도롱뇽을 풀어놓으면 습지가 되고, 유성을 풀어
놓으면 밤하늘이 된다. 그 위에 오는 오브제 여하에 따라서 배경 화면이 달라지는, 마치 움직이는 그림책과도 같
은, 가변적인, 상황 논리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조각의 형식논리를 넘어, 조각에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서사 조
각 혹은 풍경 조각을 예시해주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작가가 직접 주조해 만든 오브제들인데, 이로써 기하학적 패턴이 강조돼 보이는 추상적인 화면과 사실적이고 재
현적인 오브제가 대비돼 보이는, 그리고 여기에 평면과 입체, 회화와 조각이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합치되는, 그
리고 여기에 이야기마저 함축된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조각(아니면 작업)이 예시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로써 작
가가 자기만의 형식과 방법론으로 조각을 확장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부가적인 어떠한 오브제도
없이,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패턴이 강조돼 보이는 화면 자체만으로 마감한 작업도 있다. 이번에는 오브제 대신
폴리싱 기법이 동원된다. 주지하다시피 금속은 빛에 반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성질에 착안한 것이다.
광택 마감 처리한 부분과 별도의 마감 없이 최초의 질감 그대로인 부분을 대비시켜 차이를 강조한 것인데, 그 내
용으로는 그 의미를 알만한 문자와 숫자와 기호들(이를테면 꿈과 같은)이 동원된다. 향후 작업이 더 섬세해지고
확장이 된다면 특정의 메시지를 함축한, 좀 더 긴 문장과 텍스트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작업에 개념적인
장치며 의미론적인 측면을 도입하고 강조한 경우로 봐도 좋을 것이다.
금속은 빛에 반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일종의 거울효과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 작가의 작품 앞
에 서면, 더욱이 광택 마감 처리한 부분 앞에 서면 작품을 쳐다보는 사람을 되비쳐 보여준다. 여기서 작가의 작업
은 굴곡진 격자 모양의 모나드가 반복 확장되는 구조를 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형상 그대로를 보여주는 대신, 절단
된, 분절된, 부분과 부분이 잇대어진 불완전한 모습을 되돌려준다. 그 불완전한 모습이 우연한, 이질적인, 무분별
한 타자들의 집합으로 구조화된 현대인의 초상을 보는 것 같다. 타자와의 얽히고설킨 관계로 구조화된 잊힌 초상
에 이어, 또 다른 층위에서 현대인의 징후와 증상을 표상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