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민병도 한국화 50년(서울전) 2023. 1. 4 – 1. 15 갤러리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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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50년,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문득 지나온 ‘나의 한국화 50년’을 제대로 한 번 돌아다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동안 적잖은 소
                  재나 표현의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오로지 나아가고자한 방향의 선택에 치중하느라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고 좌표를
                  확인해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장르가 전통을 기반으로 한 한국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지나온 길에 대한 믿음 못잖게 새롭게 열어가야 할 길에 대한 당위當爲를 미덕으로 생각하였
                  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되돌아보면 나의 화업畫業은 계산된 오류誤謬의 결과물이었다. 개성 있고 좋은 문학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선택한 미
                  술대학에서 나는 그만 한국화의 마력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유산 민경갑 선생님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전공을 선택
                  해야할 무렵에 만난 선생의 신기에 가까운 필력과 표현력은 한국화를 처음 대하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민족화
                  의 전통이 감당해야 할 차별화에 대한 강설은 망설임 없이 한국화를 전공하기로 한 결심으로 이끌었다.


                  물론 단번에 한 결심으로 표현하였지만 우리 민족 고유의 타고난 정서적 기질이 발아의 촉매가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문학의 갈래를 찾다가 만나게 된 정운 이영도 선생님의 시조 또한 한국화의 세계와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선택을 도
                  왔을 것이다. 조금 더 확산하면 이미 한 차례 마음을 설레게 하였던 모산 심재완 선생님의 서예가 보여준 풍취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에 다가와 나의 선택을 이끌었는데 어언 50년에 이르게 되었다.


                  그 동안 내 그림의 주된 소재는 산이 중심인 우리네 자연이다. 인간도 자연의 한 구성체이고 보면 우주의 거대한 질서
                  앞에서는 존재의 우월이 보장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섭리를 거스를 수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기에 역사 이래
                  로 자각과 정신문화를 존중해온 문명집단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궁
                  리에 집중하여 왔던 것이다. 나의 자연 또한 그 철리哲理의 조응적 경전經典에 다름이 아니다. 그 같은 절대적 기치 아
                  래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외형의 관찰과 묘사, 전통적 기법의 연마, 서구적 기법에의 이입, 화면의 확장과 독자적 포치,
                  지필묵紙筆墨이 갖는 전통회화의 특질과 정신성의 조화,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독자적 가치의 추구 등이 지금까지의
                  작업을 이끌어왔다고 생각된다.


                  흔히 “나무를 보면 산을 볼 수 없고 산을 보면 나무를 보지 못 한다”고들 한다. 순간순간 충분히 감안하고 창조적 질서
                  를 궁리해 보았지만 나의 ‘한국화 50년’은 다시 자신과의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시점에 당도하고 있다. 필생의
                  작업들이 보듬어온 화의畫意를 반성적이며 성찰적으로 고찰하여 다시 한 번 새로운 가치질서로 회화적 완성을 확보
                  하고 싶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시정화의詩情畫意”를 주장하였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나 시에서는 감성을 통하여
                  공감을 이끌어 낸다면 그림은 뜻이나 의미를 중심으로 공감대에 접근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내 그림의 초년기부터 목표를 두어온 “시는 내가 사는 지리적, 사회적, 정신적 진단이요 그림은 그
                  처방이다”라고 하였던 발상을 수정하여 “나의 시나 그림은 우리시대의 진단이자 처방이다”라는 논지를 확립하고 그
                  에 버금하는 작품방향이 확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2. 5월  민 병 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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