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전시가이드 2024년 0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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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수마감-매월15일  E-mail :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양재천 풍경, 117x91cm, oil on canvas, 2024           양재천 풍경, 193.9x130.3cm, oil on canvas, 2024










            는 그곳에서 가죽만 남은 고양이가 서서히 먼지로 변해 산화되어가는 과정을        다. 이는 고양이 ‘묘(猫)’를 묘할 ‘묘(妙)’로 바꾸어 고양이 로드킬이라는 하나의
            지켜봐야 했다. 그로부터 두세 달이 지나 만물이 소생하는 이른 봄날, 여전히      사건이 아니라 개념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사고 장소를 지나면서 그녀는 나무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죽음과 삶이 혼종된 공간은 사실 우리 삶에서 종종 발견된다. 그녀의 기억에
            보는 순간 뭉클한 감동이 일어났다. 추위를 견뎌내고 새싹을 틔우는 나무의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또 다른 사건은 어린 시절 집에서 기르던 개의 죽음
            강인한 생명력이 죽은 고양이의 변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다. 개가 수명이 다해서 마당 장독대에서 서서히 숨을 거두어 갈 때, 이를
                                                            감지한 파리들이 개의 입 안에 하얀 알들을 너무도 가지런하게 까 놓은 것이
            우리 인생에서 탄생은 삶의 시작이고 죽음은 삶의 끝이기에 삶과 죽음은 공        다. 그 장면에서 그녀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는 개에게서 비극적 슬
            존할 수 없다. 이 죽음의 공포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이어서 우       픔을 느끼는 동시에 하얀 알들에서 신비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처럼
            리는 삶에 집착하고 삶의 연장을 위해 종교를 만들고 의학을 발달시켜 왔다.       죽음과 탄생, 추함과 아름다움이 중첩된 공간은 이상적인 유토피아도 아니고
            만약 우리 의식이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면 대우주의 순환법칙        어두운 디스토파아도 아니다. 굳이 규정한다면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
            을 거시적으로 관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녀는 봄날에 싹을 틔우는 나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의 생명력을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동시에 소멸해 가는 죽은 고양이의 기억
            을 떠올림으로써 현재의 감각과 과거의 기억이 비선형적으로 중첩되고 얽혀         푸코가 이름 붙인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다양한’, ‘혼종된’이라는 의미의 헤
            있는 현상을 경험한 것이다.                                 테로(heteros)와 ‘장소’라는 의미의 토포스(topos)가 합쳐진 개념이다. 푸코
                                                            는 모든 장소 바깥에 있는 이상향으로서 유토피아의 개념과 대비시켜 헤테로
            이후 죽음과 삶, 현재와 과거가 동시적으로 중첩되고 얽혀 있는 ‘혼종의 공간’     토피아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장소를 가지는 유토피아”라고 정의했다. 이
            은 조강신의 작업을 이끄는 핵심 주제가 되었다. 2010년경부터 제작한 <묘      는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지금-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실제로 접하
            원경(猫源境)> 시리즈는 로드킬 당한 고양이 사건에서 비롯된 체험에서 비롯       고 경험할 수 있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은 우리가 평소 알
            된 것이다. 이 작품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나무는 죽은 고양이의 혼령을 흡       고 느끼던 진부한 장소와는 다른 이질적인 혼종성으로 재배치된 현실이다.
            수한 듯 동물성을 띠고 있고, 때로는 동물 형상의 열매를 맺기도 한다. 동물과     이번에 새로 제작된 조각들은 회화에서 시도한 혼종의 공간을 입체로 압축
            식물이 이종교배로 만들어진 거 같은 이러한 형상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고집        하여 보여주고 있다. 기다랗고 하얀 몸통을 지닌 나무의 형상은 각종 동물과
            하지 않고 서로를 탐닉하며 자유로운 변형을 이루고 있다. 어떤 고정된 개성       영혼의 교배를 이룬 탓인지 관절이 있는 중성적인 형태로 변해 있다. 아직은
            체가 아니라 잠재태로서의 형상들은 타자의 신체와 동등하게 공명을 이루며         나무의 형상에 가깝지만, 움직임이 자유로운 동물성의 활동으로 머지않아 움
            무한히 변해가는 가능성에 열려 있다. 그래서 동물 같은 식물, 식물 같은 동물     직일 거 같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흰 몸통과 대비를 이루는 상단 끝부분
            이 중성화되어 변해가는 낯선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의 연두색은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부활을 일구어내는 불굴의 생명력을 상
                                                            징하는 듯하다.
            이러한 세계에서 삶과 죽음, 동물과 식물 같은 이분법적 분류는 내파되고, 우
            리의 편견이 만들어낸 우열이나 주종의 관계 역시 무의미해진다. 특히 보색들       삶과 죽음, 주체와 객체 같은 이분법을 초월한 이 불굴의 생명력이야말로 작
            이 충돌하는 과감한 색채의 대비는 조화로움보다는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만,        가가 추구하는 궁극의 대상이다. 니체가 노예도덕을 부수고 ‘힘에의 의지’를
            음과 양처럼 이질적인 대립이 상호작용하며 하나를 이루는 우리의 현실을 은        통한 초인을 갈구한 것처럼, 그녀는 현대 사회가 이분법적 잣대로 규정하고
            유하는 듯하다. 이러한 장면은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에서처럼 꿈이나 환상         억압한 힘을 해체하여 주객일체의 생명작용을 복원하려는 듯하다. 이처럼 <
            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파편화된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묘원경>의 혼종 공간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즉흥
            이번 전시에서 그녀는 전시 타이틀을 동명의 <묘원경(妙園境)>으로 바꾸었        의 힘이 창조한 공간으로서 보는 이에게 현상학적인 만남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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