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김연식 개인전 2023 5. 5. 30 갤러리모나리자 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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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지문, 혹은 풍경의 지문 같은


           고 충 환 (Kho Chunghwan 미술평론)






           물보라를 일으키며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같은. 수면에 반짝이는 윤슬 같은. 해일 같은. 해류 같은. 기류 같은. 태풍의 눈 같은. 토
           네이도 같은. 회오리 같은. 녹조 같은. 적조 같은. 수면에 번지는 기름띠 같은. 첩첩한 나무껍질 같은. 첩첩한 시간의 켜 같은. 지층
           같은. 단층 같은. 등고선 같은. 협곡 같은. 계곡 같은. 소금산 같은. 항공지도 같은. 해양 지도 같은. 지질지도 같은. 원석의 단면 같
           은. 호박화석 같은. 대리석의 표면 질감 같은. 운석 같은. 유성 같은. 달의 표면 질감 같은. 오로라 같은. 빛에 반응하는 자개의 표면
           질감 같은. 우묵한 동굴에 매달린 종유석 같은. 불덩이를 안고 타고 흐르는 용암 같은. 화산 같은. 턱턱 갈라진 논밭 같은. 바위 표면
           에 말라붙은 마른 이끼 같은. 빗물 자국 같은. 빗물에 씻겨 칠이 벗겨진 벽면 질감 같은. 박락되고 탈색된 시간의 흔적 같은. 비정형
           의 얼룩 같은. 파충류가 벗어놓은 허물 같은. 빅뱅 같은. 존재를 삼킨 블랙홀 같은. 존재를 낳는 화이트홀 같은. 카오스 같은. 우연하
           고 무분별한 생명력의 분출 같은. 파장 같은. 파동 같은. 파문 같은. 자연의 지문 같은. 풍경의 지문 같은. 존재의 지문 같은. 에너지
           와 에너지가 충돌하면서 잇대어진 경계 같은.


           이것들은 다 무엇인가. 볼 때마다 다르고, 아마도 사람들마다도 다른 것을 볼, 그림 속 형상은 다 무엇인가. 사람들마다 다른 것을
           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인문학적 배경이 다르다. 그래서 같은 것을 보면서도 사실은 다른 것을 본
           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 같은 것을 볼 때도 그렇다. 그렇다면 객관적 현실 혹은 실재는 없는 것인가. 없을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그
           런 것은 왜일까. 그림 속 형상은 혹 바로 이런 질문, 그러므로 보는 행위에 담긴 의미론적인 문제를 물어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 속 형상치고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대상을 콕 찍어 특정할 수 있는 형상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oo처럼 보일 뿐인
           형상들, 암시적인 형상들, 잠재적인 형상들, 이행 중인 형상들이 있을 뿐. 형상 이전의 침묵 속에 들끓는 계기가 있을 뿐. 형상을 예
           비하는 형상 그러므로 예비적인 형상이 있을 뿐. 모든 그림은 oo에 대한 표상일 뿐, oo 자체가 아니다. 다만 oo 자체가 되고 싶은
           관념이고 헛것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그림의 운명이고 형상의 숙명이다. 혹 작가의 그림은 이런, 그림의, 형상의 운명을 그려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그림은 자연풍경을 연상시킨다. 관념적인 풍경을 연상시킨다. 미시적인 풍경을 연상시키고, 거시적인 풍경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감각적 실재라고 알고 있는 자연풍경은 사실은 적정거리에서 본 풍경, 그러므로 우리의 감각이 가닿고 의식이 미치는 한에
           서의 풍경이다. 거시든 미시든 그 거리를 벗어나면 추상과 형상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그러므로 추상은 형상을, 형상은 추상을 이
           미 자기의 한 잠재적인 본성으로서 품고 있었다고 해도 좋다. 작가의 그림은 혹 이런, 그림의 그러므로 형상의 양가성을 그려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작가의 그림은 자연을 그린 것인가. 아니면 자연성을 그린 것인가. 자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피직스)과 자연
           성(나투라)을 구분했다. 감각적 자연의 원천 그러므로 자연의 원인이 자연성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 식으로 치자면 기라고 보면 되
           겠다. 기의 운행, 기의 운동을 감각적 형태로 옮겨놓은 것이 곧 자연이다. 작가의 그림은 아마도 그런, 기의 운행, 기의 운동, 그러므
           로 자연성을 그려놓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우주가 막 생성되는 태초의 순간을 보는 것 같다. 자연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이 분출되는 극적 현장
           을 보는 것도 같다. 추상과 형상이 경계를 허무는,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가 삼투되는, 감각적 실재와 관념적 실재가 한 몸으로 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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