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이희숙 초대전 2023. 11. 29 – 12. 12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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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속에 보이는 세상
수많은 시간과 생각들을 쌓아 놓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림 속엔 많은 것들이 녹아 스며들어 있다.
앞마당 한가운데 크게 자리 잡았던 꽃밭은 어릴 적 기억의 한 조각이다.
그래~, 정겨운 이름 꽃밭입니다.
꽃 속에 보이는 세상들-
아련한 기억들은... 눈을 감으면- 더 또렷하게 기억을 살려낸다.
마음의 소리를 담을 새 하얀 캔버스는 오늘따라 크게 보인다.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생각하고, 마음의 피로도 풀며, 걱정 근심도
녹여 사라지게 만드는.. 두근 두근 기다려지는 세계-
그것들과 마주하고, 하나. 둘. 셋.. 그려본다.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 세월을 거슬러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도 나누는 아주 귀한 시간과 마주하기도 한다.
풀내음과 함께 꽃의 향기도 어디선가 다가와,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기도 하고,
붓을 든 시간은 그시 절 그 시간 속으로 깊이 숨어들어, 함께 호흡하고,
멈춘 듯 깊어지는 그리움의 시간들을 따라 동행한다.
꽃이 피는 계절마다 그 꽃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신 듯...
붉은 머리 커다란 왕관을 쓰고, 꽃밭 한켠에 우뚝 서서 반짝이는
검은 씨앗들을 보석처럼 꽁꽁 숨기듯 가득 품은 꽃. 맨드라미...
새하얗게 부풀어 오른 살 위로 붉은 맨드라미를 얹어
분홍빛 그림을 예쁘게 그려냈던 기정떡.
추억 속에 있지만, 순박한 멋과 맛을 내 맛있는 간식이 되곤 했다.
맨드라미와 어머니, 그리고 기정떡은 항시 연관어처럼 추억이라는 통로 안에
기억을 여는 열쇠가 된다.
햇살 좋은 가을이면 마당 한켠에 창호문들을 떼어내 가지런히 벽에 기대어 놓고,
예쁘게 꽃잎을 넣어 장식을 하고, 햇볕에 바싹 말려 은은하게 멋을내 기억의 문을
꾸며 놓으시기도 하고-그런 소소한 일들은 계절마다 이어지는 이벤트였다.
어머니의 꽃밭은-봄이면 진달래, 노란수선화를 시작으로 새하얀 백합과 붉은 사루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