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이희숙 초대전 2023. 11. 29 – 12. 12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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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수레바퀴꽃... 등등
갖가지 꽃들이 사계절 피고 지고, 그로 인해 시각. 후각. 미각까지도 즐겁게 했다.
뜨거운 여름 더운기운을 식혀주려 긴~호스줄의 끝을 눌러 꽃밭에 물을 뿌려대면,
무지개 빛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로 장난치며 즐거워했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
오빠의 기타 소리에 목소리 높여 함께 노래하던 형제들의 어린 시절도 같이 숨을 쉰다.
즐겁고 신이 났던 시간들. 철없이 즐거움을 누렸던 어린 시절은 바로 엊그제 같거늘...
퇴색되지 않은 그 시간 속으로 단숨에 빠져든다.
생각해보니, 그 시절 꽃밭은 어머니의 하루의 고단함을 삭이고-갖가지 세상살이,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마음의 창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머니의 나이쯤 되어보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깊은 숨을 들여 마셔본다.
기억이란 그 시간들은 폐부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어 봉인되었다가, 그리운 날에
날숨처럼 살며시 내게 온다.
사계절 소박하지만, 때론 화려하게-
나풀나풀 날아다니며 부지런히 꿀을 따던 벌과 나비.. 화단 안에 크게 자리 잡은
은행나무는 늘 고양이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꽃 속에 보이는 세상에서ㅡ 시간은 더할수록
계속해서 색깔을 입혀 농익은 색깔로ㅡ 덫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며 기억이라는 폴더 속에 저장된 작은 추억들은
영양제처럼 힘들 때도, 즐거울 때도- 가끔씩 꺼내어 먹는 간식처럼 달콤해서
마음속 깊이 꽁꽁 숨겨져 있어도 술래처럼 잘 찾아낼 수 있다.
이젠 저~만큼의 시간 속으로 물러나있지만 영원히 내 안에
달달한 향기를 뿜어내느니... 그 기억들로 하여금 살아가며, 또
나를 일으키는 힘으로 충전시켜 줄 것이다.
-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