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손미량 초대전 2023. 5. 17 – 6. 2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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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량 작품전
남다른 기술 및 감각 이면에 은거하는 심미 표현
글 : 신 항 섭 (미술평론가)
그림에서 인물은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의 하나이다. 세계미술사는 인물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
큼 서구의 미술관들을 가득 채우는 그림 대다수가 인물화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는 유독 인물화에의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소묘를 배제하는 대학교의 미술교육에 근본적인 원인
이 있다. 인체소묘를 배우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건만 한국의 미술대학에서 이를 교과목에 넣는 경우는
몇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대학에서 인체소묘를 가르치지 않으니, 인물화가 극히 적을뿐더러 일반적인
관심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단순히 묘사실력만을 보여주는 인물화가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그림
과 마주하면 풍경이나 정물과는 다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식에 따
라 인물이 지닌 내면세계, 또는 그림에 담긴 의미와 내용을 탐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손미량의 그림이 그러하다. 아이와 가족이라는 제재를 통해 일상적인 단편을 캔버스에 불러들인다. 아이와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단위이면서 한 가정의 구심이다. 물론 부모와 형제자매라는 구성도 가정
의 한 단위이기는 하지만, 아이와 가족이라는 구성은 실질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단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
다. 다시 말해 아이는 가정을 이루는 단위이면서 미래를 향한 지표가 된다.
그의 그림에서 아이는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이탈하는 형태로 표현된다. 홀로 있는 아이라는 설정은 현실적
인 분위기에서는 어딘가 불안감을 주는 요인이다. 그런데도 그의 그림에서 아이는 거의 혼자인 채로 등장
한다. 여기에 작가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인 아이는 현실적인 상황이 아니다. 지
나간 어느 시점에 붙박이가 된 채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현실적인 상황을 대
입시킨다고 해도 자연스럽다. 그렇더라도 그의 그림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시간이라는 시제를 붙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존재하는 그림 하나하나는 비현실적인 장치로 꾸며진다. 복고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미
묘한 분위기가 마치 투명한 베일처럼 드리워져 있다. 아이가 존재하는 상황에 관한 설명은 없고, 다만 무언
가 흐릿한 이미지가 화면을 덮고 있다. 그처럼 모호하게 처리되는 이미지는 아이를 현실적인 공간으로의
진입을 차단하는 장치이다. 어떻게 접근하던지 농후한 비현실성을 거두어 내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어쩌면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는 지나간 시간의 반추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
음을 뜻하는 건 아닐까.
배경에 흐릿하게 표현된 이미지들은 현실로부터의 먼 과거의 시간임을 의미한다. 선이나 의미한 실루엣 이
미지, 추상적인 터치, 쓸쓸하게 자리하는 기하학적인 선들, 에스키스 같은 나무 이미지, 실루엣 인물들 그
리고 복고적인 색채 등의 배경이 그렇다.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표현 및 이미지를 통해 추억의 어느 시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