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김민배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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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낭만정객 雲庭 金鍾泌과 나
조선일보에서 15여 년의 정치부 기자를 거쳐, 청와대 출입기자(김대중 면서 JP에게 마음의 동정심과 격려를 보내는 조그마한 기사를 2번 쓴
정부), 정치부장을 거치면서 숱한 정치지도자들과 조우했다. 기억이 있다.
YS, DJ, JP 등 소위 3金을 비롯,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런 정치적 파동이 계속되던 어느 날 JP의 비서였던 최인관씨가 6층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가까이서 그들을 비서실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래서 갔더니 JP가 직접 써서 표구까지 한
直視하고 함께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행운도 누렸다. <其言文而眞 其行峻而通> 휘호를 <金民培記者> 이름까지 넣어서 감사
의 뜻을 전했다.
1980, 1990, 2000년대를 풍미했던 정객들과도 이런저런 인연과 에피
소드로 엮여있다. 휘호의 의미는 <그 말과 글은 진리요, 그 준엄한 행동은 서로 통한다>
는 것이었다. 나는 이 휘호를 그때 이후부터 지금까지 간직해 왔다. 그
나의 정치부 기자는 1989년 민정당으로부터 시작했으며, 당시 노태우 리고 볼 때마다 JP와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는 비록
대통령은 YS, DJ, JP가 주도하는 野3당과 소위 4당 체제를 이루고 있었 2018년 6월 23일 生을 달리했지만, 그의 정치유머감각, 따뜻한 인간미,
다. 노대통령은 노회한 <3金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숱한 독서편력, 그림, 음악에의 조예 등 <거인 정치인>의 족적을 남겼
다.
이 고민의 산물이 1990년 1월 22일 노태우의 민정당, YS의 통일 민주당,
JP의 신민주공화당 간 전격적인 <3당 통합>이었다. 내각제 개헌을 권력 요즘처럼 대립과 갈등의 소모적이고 1차원적인 국내 정치현장을 보노
나눠먹기가 합의의 연결고리였다. 라면 JP와 3金등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흔들던 <빅guy>들이 떠오름은
어쩔 수가 없다. 하늘나라에서 平安을 빈다.
YS는 그러나 애초부터 내각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는 게 필생의 꿈이었다. 한 지붕 3 가족 체제의 <민주자유당
>이 탄생 이후 내내 권력암투로 삐걱거린 이유였다.
결국 YS는 <내각제 합의각서>를 파기하고, 갈등을 겪던 YS와 JP는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결별을 하게 된다. 이 당시 민주자유
당 출입기자였던 내각제 합의를 파기하고, JP를 내쫓는 과정을 지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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