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오세열 초대전 8. 30 – 9. 26 나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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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적 감성의 향연
- 나마갤러리 오세열전에 즈음하여
화가 오세열선생은 규칙적이다. 규칙적인 것은 정확한 것이고 곧 믿음이다. 아침 여덟시반이면 어김없
이 출근하고 저녁 다섯시반이면 퇴근한다.
양평의 강가에 자리잡은 오세열선생의 아지트는 1층이 작업실이고 2층이 자택이니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 낭비는 없다. 부득이하게 연장하여야 할 일이 생기면 한시간 더 근무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정
이 아니다. 오세열 선생 스스로가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독창적이다. 주일은 쉰다. 신
앙 생활에 충실한다. 다음주의 일을 위한 재 충전을 한다. 매우 전형적이고 정상적인 우리네 삶의 패턴
이다.
오세열선생을 뵈는 첫인상은 특별하다. 크지 않은 체구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 희끗희끗한 머리와
콧수염이 마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보다 더 멋진 분을 대면하는 듯 하다. 오랜 교직
생활의 영향인지 대화는 짧으나 조리 있고 유머스럽게 풀어 나간다. 필요한 말만 한다. 까칠하다는 느
낌이 많다. 어느날은 파리 한 마리가 화실에 들어 왔다가 겨우 내 보냈는데 그 날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그림을 못 그렸다 한다. 어떤 날엔 오선생의 작업장에 거의 완성된 작품을 보았는데 다음
날 가 보니 그 그림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다른색으로 칠해진 같은 크기의 화판만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어 여쭤보니 맘에 안들어 덮어 버렸다는 일화는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오세열선생은 타 작가의 그림 전시장에 그림 감상하러 가기를 매우 꺼린다. 다른 작가의 여운이 자신의 머릿속에 잠입하여 생각이 어지럽게 정리되는 게 싫은
것이다. 그래서 오세열선생의 그림이 특별하다. 어린아이 그림처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그림처럼 보이나 곧 팔순을 바라보는 노장의 작품이다. 오랜 세
월의 소중한 기억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오세열선생의 작품은 누가 보아도 오세열 선생의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 번이라도 오세열 선생의 작품을 눈 여겨
본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
오세열선생 작품의 유형을 굳이 나누어 보자면 인물, 숫자, 정물 그리고 기호 중심의 시리즈로 대분해 볼 수 있다. 또한 각각의 화폭에는 꼴라주기법을 병행하여
관찰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래도록 두고 보고, 또 보아야 한다.
그의 그림에는 남녀노소와 희노애락이 모두 존재한다. 특히 상하 또는 좌우로 면 분할하여 완성한 그림에는 그의 많은 기법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오세열 선
생만의 특별함이 있다.
그동안 많은 평론가들이 오성생의 작품에 관한 시대적 구분을 했다. 60년대에는 정물과 인물, 70년대는 반추상과 추상, 80년대는 낙서하듯 벽면을 거칠게 긁
어낸 암시적 추상, 90년대 이후는 기호와 숫자를 바탕으로 하는 기호학적 추상 작품의 특징을 나타낸다고 한다.
오세열선생은 캔버스에 합판을 대어 특별히 제작한 화판 위에 겹겹히 쌓아 올린 물감층을 긁어내고 문질러 작업한다. 상처와 회복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기억과
생각을 담아낸다. 화면에 기호나 숫자등을 빼곡히 채우거나 어린아이의 칠판 낙서처럼 자유로운 도상을 구성해 나아간다. 그 중에서도 단연 인물과 숫자는 그
의 그림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일 것이다.
작품 속 인물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하지만 정상적인 인간은 찾아볼 수가 없다. 때로는 눈, 코가 없거나 귀가 없기도 하고 팔과 다리가 하나이거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세열선생은 이처럼 비례가 맞지 않아 보여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그려낸다. 선생은 오래전 전쟁의 아품을 겪은 우리에게 전상인이든 비정상이든 함께
보둠어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을 화폭에 표현하고자 한다. 그의 지극한 신앙심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다.
오세열선생의 이렇듯 의도적 표현이 감상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그림 앞에서 더욱 더 오래 머무르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어린아이와 노인은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단순하다는 겁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순박하잖아요. 어떤 대상을 보고 그릴 때, 기술적으로 잘 그리려고 하
는 애들은 하나도 없어요. 그냥 보이는 대로 순수하게 그릴 뿐이지. 저는 그런 걸 중요시해요. 저 또한 잘 그리려고 애쓰는 작가는 아니에요. 역설적이지만 잘 못
그려야 진짜 그 사람의 자아, 정체성, 숨은 의도, 인간성이 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되죠. 기교는 제 그림에서 중요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잘 안 그려도 되는 것들에 늘 관심을 가지고 찾아내고 있어요. 그중에 대표적인 게 글자와 숫자입니다. 특히 숫자는 잘 쓸 필요도 없어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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