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경기룩아트Vo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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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사랑
에
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사랑의 찬가(L'Hymne A L'amour / 1950)를 듣게
되면 곡 전체에 흐르는 간절함이 가슴속 깊이 스며든다. 그렇듯 그 곡의 탄생은 사랑
하는 연인의 공연을 보러 가던 마르셀 세르당이 비행기추락 사고로 사망하게 된 후
가장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야 했던 에디트 피아프의 진심이 담겨진 창작물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채워주는 또 하나의 공간
은 사랑하는 연인이었으며 그 연인은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외로운 영혼의 안식처이
기도 했다.
화가에게 사랑하는 여인이란 그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뮤즈(muse)이
었을 것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화가들의 고단한 삶속에 기꺼이 함께 했던 그들의 이
야기를 보면, 어떤 화가는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또 어떤 화가의 이야기는 지
독하게 모질기만 한 사랑을 하기도 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는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
고 늘 가난에 허덕이며 힘겹게 살아가는 불운한 화가였다. 그러나 미술사(美術史)상
최고의 미남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세련된 매
너까지 갖추고 있던 이탈리아 출신 모딜리아니는 당시 파리 화단에서 최고의 인기
남 으로 대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모딜리아니는 그에 상응하는 화려
한 여성 편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917년 여름 러시아 조각가 차나 올로프(Chana
Orloff) 의 소개로 일본인 화가 츠구하루 후지타(Tsuguharu Foujita)의 모델이었던
19살의 수줍은 소녀 잔느 에뷰테론(Jeanne Hebuterne)을 만나게 된 모딜리아니는
첫 눈에 그녀에게 반하게 되고 잔느 또한 모딜리아니를 평생의 사랑이라 생각하며 둘
은 함께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시 모딜리아니에게 놓여진 환경과 여건은 이들의 사랑이 순탄 할 수 없음을 예고했
을 것이다. 특히 진솔한 카톨릭 신자로 상당히 보수적이고 브루주아적 배경을 가지고
있던 잔느의 부모님은 19세의 어린 딸을 34세의 나이 많고 가난하며 인정받지 못하
는 유태인계 모딜리아니를 딸의 반려자로 인정 해
주지 않았고 그 완고함에 두 연인은 힘겨운 인연을
이어 가야만 했다. 이를 무릅쓴 에뷔테른은 가족과
의 인연을 끊고 이듬해에 첫딸을 나으며 3년간의
짧은 불같은 사랑을 한다.
알콜중독과 방탕한 생활로 에뷔테른을 힘들게 했
던 모딜리아니의 건강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나빠
져 결국 1920년 1월 24일 36세의 젊은 나이에 결
핵으로 잔느만을 남겨둔 채 사망한다. 그에 크게
절망한 잔느는 당시 두째 아이를 가지고 만삭인 상
태에서 모딜리아니의 사망후 불과 이틀 뒤 "천국
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드릴게요"라는 말과 함
께 자신의 아파트 6층에서 투신하여 모딜리아니의
곁으로 가고 만다.
살아생전 모딜리아니는 입버릇처럼 잔느에게 "죽
어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주겠소?" 라고 했다는데
결국 잔느는 그와의 약속을 그토록 극단적이며 비
극적으로 지키게 된 것이다.
잔느 에뷰테른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