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추경희 초대전 2024. 7. 1 – 7. 31 카페갤러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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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를 ‘특정한 위치에 둔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 ‘포네레’(pōnere)에서 유래해서

             명사 ‘포시투라’(positūra)로, 그리고 마침내 영어의 ‘몸짓’(posture)으로 굳어
             졌다. 추경희는 이처럼 몸짓을 다루면서 인체가 일구는 다양한, 아니 거의 무

             한에 가까운 ‘포지투라’의 변형생성(變形生成)을 추적하 듯이 그린다. 그러기에
             그녀의 누드화는 크로키(croquis)와 데셍(dessein)에 가깝다. 그것은 몸짓의

             세세한 부분을 모두 그리는 게 아니라 몸짓이 ‘드러내는’(se dessiner) 프레임
             을 직파(直播, directly depict)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뜻에서 추경희의 누드화

             는 그녀의 언급처럼, 자신의 관찰력과 감동을 지각표상(知覺表象, perceptive
             representation)에다 실어내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 추경희의 누드화는 직관적 관찰을 빌려 여기에 상응한 개인적
             정한(情恨, sentiment against bitterness)을 배후에서 작동시킨다. 이는 결코

             고전 누드화에서 보는 섬세한 정감(情感, emotion)이 아니다. 그 정황은 그녀
             가 오랜 세월 후세대의 인성도야를 도모했던 교직자적 인습의 소산이 아닐까

             싶다. 이는 결코 어줍다는 게 아니라 복잡다단한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놓치
             고 있는 무구(無垢)한 감흥이자 순연한 정한의 역할이자 표출이라 해야 할 것

             이다.








                                                                    2024, 7
                                        미술평론가, 前, 홍익대학교 교수  김  복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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