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장범순 개인전 2023. 10. 11 - 10. 16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P. 4

장범순의  「오징어 게임 리스펙」과 풍자




            글 : 김진하(미술평론가)


            이번 장범순 개인전은 「오징어 게임」이란 영화 한 편에 대한 장범순의 반응이자 그래픽적 고찰이다. 다시 말하자면 장범순은 「오징어 게
            임」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그 내용을 본인의 개인전 제목에 사용할 정도로 공감이 컸던 모양이다. 후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시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변태성에 대해서 테러리즘에 가까운 독특한 풍자와 형식으로 세계적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기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우리 시대의 음울함을 증언해낸 리얼한 드라마였다.



            장범순은 이 영화의 줄거리를 텍스트로 해서 「오징어 게임 리스펙」이란 타이틀로 연작을 그렸다. ‘리스펙 Respect’은 존경이나 존중을
            의미하는데, 근래 대중문화적 트렌드로 자주 소환되며 널리 사용되는 어휘다. 예를 들면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힙합이나 브레이크 댄스

            에서 배틀이 붙었을 때 상대를 야유하는 ‘디스’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상대 실력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중할 때 이 ‘리스펙’을 추켜올린
            엄지손가락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상에서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는 화용론적 기호로도 자주 구사한다. 장범순은 이
            리스펙을 전시 제목에 의도적으로 붙여서 「오징어 게임」 원작에 대한 오마쥬와 함께, 원작과는 결이 달라지는 자기만의 조형적 양식을

            드러낸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지체되고 모순된 현실을 풍자한 블랙 코메디다. 실제적인 여러 사건과 현상을 비틀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불공정과 부조리도 비판한다. 그러니까 「오징어 게임」은 이미 당대 여러 사회 현상들을 패러디한 작품이고, 장범순은 그 「오징
            어 게임」을 다시 회화로 재인용하는 메타-패러디로 동시대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했다. 자신의 시각성과 조형 방식으로 각 작품마다의 메

            시지를 통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연역해냈다라고 할까, 원작을 차용하되 영화와는 다른 맥락에서의 시각적 형상성을 담보했다는
            뜻이다. 문학이나 예술에서 어떤 원전이나 텍스트를 패러디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당대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하는 작품에서는 드물
            다. 작가가 직접 대면하고 체험한 삶이 타 작품보다 훨씬 리얼한 소재꺼리라서 그렇다. 굳이 다른 작품을 빌려오지 않아도 될 만큼의 생

            생한 경험들이 주변에 비일비재하기에, 이런 내용을 선택한 작가들은 자기 경험을 중심으로 작업을 전개하는 편이더 쉽다. 따라서 대개
            타인의 작품을 원전으로 작업하지 않는다.그런데도 장범순은 시각미술과는 다른 타 장르인 영화를 회화(한편으로는 일러스트레이션)
            로 빌려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앞서 말한바 「오징어 게임」에 대한 오마쥬의 의미도 있지만, 원전에서 공감한 강력한 내용적 함의를 자기

            식의 평면 언어로 번역하고, 영화의 서술성을 캔버스에 고정된 형상성으로 재설정-재구성한 것이다. 이는 영화와는 다르게, 그 내용을
            그래픽으로 증폭하고 회화적 소통구조를 통해서 관객에게 전유하려는 시도다. 그 결과 각각 개별 단위로 환원시킨 에피소드를 그린 장

            면들은 원작으로부터 독립적이되, 그것들이 모여서 다시 「오징어 게임」 전체 흐름과 뉘앙스를 견인해낸다. 그런 내용들의 결과론적 집
            점이 ‘의인 코스프레’와 ‘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이란 작품이다. “The Winner Takes All“이란 신자유주의에 대한 핵심 비유처럼, 인간+
            짐승의 가면으로 변태한 절대 존재 빌런이 부와 권력을 독점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처리했다. 영화를 해석하고 반응하는 장범순식의 압

            축된 미장센 구축이라 하겠다. 그리고 여기에서 작가는 전통적 회화의 ‘재현’이나 ‘표현’적 방식보다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박탈해서 ‘기
            호화’된 인물을 동작과 코스츔 색채만으로 상황 연출을 한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몸 궤적을 반영하는 액티브한 질료의 물질성 ‘팍투라
   1   2   3   4   5   6   7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