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안창석 개인전 10. 12 – 10. 18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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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투명유리에 색을 입히고 캔버스에 하나하나 붙여 나갈 때             "
                     그의 아날로그 픽셀은 개념적으로 과거로부터 누적된 기억을 담고 있는
                                    이미지의 단위가 된다.




       론을 펼치면서 폐차의 유리 조각을 사용해 즉물적이라고 할 만큼 마띠에르가 거친 작업을 시도
       했다. 자동차는 탑승자와 관계된 많은 기억을 안고 있는 사물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통해 펼치
       는 그의 기억론은 다소 부정적이며 냉소적이었다. 사물에게 있어 기억이란 인간의 손이 닿은
       흔적이다. 안창석은 이를 사물의 편에서‘스트레스’라고 표현하거나, 좋건 나쁘건‘응어리’
       라는 다소 부정적인 표현을 쓴다. 그는 사람과 사물의 각기 다른 접촉의 관점과 파편화된 이미
       지의 조합을 통해 미학적 접근을 하면서도 그 행위의 무의미함을 논하는데, 기억과 그 기억을
       상기하는 이미지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기억론이 이와 같은 냉소주의를 뒷받침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안창석의 폐자동차 작업이 유리 조각의 큐빅 단위로 이루어진 추상화로 향
       해갔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은 이후 단계적으로 단위로 이루어진 추상화로 변해 가는데, 이 과
       정은 명백히 픽셀 작업으로의 이행을 예견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시점에 의심하기 시작한다.
       기억이라는 주제와 거친 유리 조각이 조화를 이루는가? 이 고민은 두꺼운 마티에르와 거친 오
       브제 콜라주 방식을 폐기하고 순수한 회화적 표현 위주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의
       평면은 더 얇아졌지만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레이어가 생성되었다. 이와 함께 기억이라는 주제
       는 더 두드러지고 살이 베일 듯 날 것의 유리 조각은 회화적 느낌 속에 자연스레 묻힌다. 픽셀
       이라는 의미소 개념과 그것을 붙여가는 작업 과정은 기억과 상기의 과정과 화합한다.

       그의 픽셀 이미지 작업에서 컴퓨터 기억장치는 인간 기억의 은유로 작용한다. 인간은 경험을
       기억하고 그 기억은 주관적 자아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삭제와 수정이 이루어진다. 안창석
       은 영상콘텐츠 회사를 운영하며 평생 영상 이미지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일을 해왔다. 이미
       제작된 국내 영상이 수출될 때, 그쪽의 정치적이고 문화적 맥락에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제거
       하는 일이다. 그의 삶은 기억의 삭제와 수정 작업과 함께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안창석 스스로
       는 베르그송이나 들뢰즈 같은 철학적 개념을 거시적으로 논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미 그 자신
       의 삶은 베르그송의 물질과 시간, 들뢰즈가 말하는 비자발적인 기억과 기억의 사슬의 영역에서
       작동해왔다고 할 수 있다.

       안창석은 물성에 민감하다. 그의 초기작은 풍부한 물성이 넘친다. 이번 시리즈에서 그는 더욱 절
       제되면서도 풍부한 그림 그리는 맛을 보여주며 작업의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든 듯하다. 내가 안창
       석의 작업을 응원하는 이유는 그의 작업에 어떤 진실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그의 작업은 개념적으로 시류에 대응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시류에 맞는 회화작업을
       추구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의 작업이 그의 삶을 대표하고, 또 그와 닮았다. 그는 사물과 기억의
       사슬 속에서 성실히 본인 작업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이러한 진실성은,‘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닌‘뒤에 나타나는’작업의 일관성 혹은 통일성의 기초로 작가의 귀중한 덕목 중 하나이
       다. 안창석의 작업을 위한 성실함과 열정이 더 깊은 미학적 진전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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