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샘가 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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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
김필곤(열린교회 담임 목사, 기독시인)
그릇은 고인
허기를 홀로
끝내 삼키지 못하고
비워진 순간조차
누군가를 맞이할 일이라면
기꺼이 입을 열며
비어 있는 그릇은
이름 모를 손길에게도
차별 없이 다가갑니다.
젖은 공허는
돌 위를 흘러내리면서도
새로운 채움을 찾아
누구든, 어디든
스스로를 내어주고 얼굴 한 번 못 본
겸허히 기다리며 내일의 순간조차
희망의 초록을 기어이 깨우고
삶은 그 자리에 스며
메마른 마음에 비어 있음은
다시 숨을 불어넣습니다. 햇빛 아래
자취를 남기지 않지만
언제나
그 여백을 품은 자리에서
풍요는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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