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조풍류 개인전 2025. 4. 9 – 4. 21 인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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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한다. 대담하고도 참신하되 생략된 뼈대와 도시를 표현한 묘선(描線)은 왜곡 작가의 종묘는 밤의 시간이다. 실제로 기둥 안쪽 공간은 24시간 어둠이다. 삶과
(歪曲)과 생략에서 오는 독특한 묘미를 보여준다. 멋진 모던 감각으로 창출해 낸 죽음의 경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산자와 죽은자의 공간(창덕궁과 종묘)을 연
조풍류의 서울풍류도는 북산 김수철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사인화가(士人畵家) 결하는가 하면, 두 무대를 공감시킨 도시 풍경을 동시에 보여준다. 자연무대와
였던 학산 윤제홍(鶴山 尹濟弘, 1764~1840)의 필세(筆勢)와도 연결된다. 세부 문명무대 사이에 어우러진 풍류는 한국 미의식이 집대성된 ‘풍류미의 종합주의’
표현과 포치(布置)를 격조 있게 표현한 이들 선배화가들의 고취는 21세기 동시 라고 할 수 있다. 단청이 없지만 신들이 만나는 월대는 밤이어서 그들만의 축제
대 미감 속에서 ‘색채 미감을 감각적으로 녹여낸 조풍류의 풍경사색’을 통해 재 를 즐기듯 환하게 빛난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는 ‘유
해석된다. 실제로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와 조풍류의 풍경을 나란히 형적 원형과 무형적 행례절차’를 완벽하게 머금는데, 이들은 속세를 벗어난 비움
놓고 ‘비교/대조’해 보면 파격적인 도시 감각 안에 ‘실경산수의 직관적 문기(文 의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실제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설계한 세계적
氣)’가 공존함을 확인 할 수 있다. 작가는 서울풍경을 남산에 올라 조망한 이유에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 1929~)는 종묘를 “이처럼 고요한 공
대해 “동시대 한국화의 면모는 전통을 원형 삼은 시대정신이어야 하며, 대낮처 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이를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 비유했
럼 환하게 밝힌 다이내믹한 서울은 21세기 글로벌리즘을 향한 발걸음을 보여주 다. 100미터가 넘는 목조건축인 종묘가 한국미의 백미(白眉)임을 언급한 것이
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 왕실의 근본이자 정통성의 기반한 종묘가 충효를 바탕한 통치 이념을 지나
‘공명의 에너지=풍류색(風流色)’으로 물들었다는 것은 조풍류 작가가 ‘한국미의
진실경(眞實景)의 묘(妙), 현실계와 상상계의 종합 원형과 에너지’를 작업 안에 완벽하게 탑재했음을 보여준다. 실제 인류 구전 및
만춘(晩春)의 기운이 가득한 4월의 봄은 순환과 생성을 보여준다. 순환은 전통 무형유산걸작을 재연하는 종묘제례악 공연에서 ‘조풍류의 종묘그림’은 배경이자
시대엔 동양의 시간관이었지만, 상대성을 발견한 현대물리학의 양자적 시간은 정신이 되어 자리한다. 송혜진 교수는 이 그림이 종묘제례 공연에서 사용될 때
돌고 도는 시공간의 확장 속에서 우리를 현실과 상상의 연동으로 인도한다. 조 마다, “실제 종묘에서 공연하듯 작품의 신묘한 에너지는 앞으로도 국가 행사 속
풍류는 그렇게 과학적이고도 신화적인 순환의 시간을 ‘공명(共鳴) 풍경’으로 표 에서 빛나고 지속될 것이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조풍류 작업들은 마음 안의 깨
현한다. 작가의 작품엔 계절의 순환이 직선과 곡선을 아우르며 자리한다. 작가의 달음을 실경에 담아 ‘현상계(사생그림)-상상계(종묘)-이상계(최근 자은도 섬에
종묘 풍경은 분명 밤이다. 하지만 땅의 기운을 세운 종묘의 기둥은 햇볕을 머금 서의 작업)’를 넘나든다. 백악(白岳)과 인왕(仁王) 사이를 오가며 그린 ‘서울풍류
은 듯 붉은 직선으로 주욱 줄지어 서 있다. 달빛의 밝음과 날선 푸른 에너지의 조 도’는 시대를 뛰어넘은 정선 필 <경교명승첩>과의 평행이론처럼 우리 앞에 자리
화는 천지를 밝히고, 종묘의 꿈을 현실로 인도한다. 실제로 한국 채색화에서 블 한다. 서울 근교와 한강변의 명승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의 백미가 밝고 산뜻한
루 풍경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선지 조풍류의 작업은 초현실의 모더니티를 전 ‘풍류색’에 의해 되새겨진 것이다. 이렇듯 조풍류의 서울풍경은 정선 화풍의 확
통 한국화와 연결한 듯, 오묘한 에너지를 창출한다. 먹(墨)색이라곤 느껴지지 않 대된 지평 속에서 읽어야 하며, 21세기 동시대 한국화의 계보 속에 당당히 위치
는 풍류 블루, 하지만 재료를 장악한 작가의 탁월함은 먹에 바탕한 깊이 있는 색 시켜야 하지 않을까.
조를 ‘지극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경지로 옮겨놓는다.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