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임혜영 초대전 2025. 7. 2 – 7. 29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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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세계에 선 꽃과 여인의 숨결



          천경자는 우리 화단에서 보기 드물게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유난히 꽃과 여인이
          자주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며, 작가는 그것을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천경자의 화폭에 여인들
          이 사유하는 듯 정면을 응시하는 것들이 많다면, 임혜영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보듯이 꽃을 든 화폭의 자화상 그림들이 자꾸 아른거린다.
          이 두 여류화가의 작품에는 공통으로 모두 여인과 꽃이 등장한다. 천경자의 화폭에 여인들이 사유하는 듯
          정면을 응시하는 것들이 많다면, 임혜영 작가의 그림에는 여인의 초상을 배경으로 펼쳐진 꽃들이 영감을
          얻은 축제처럼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두 작가의 작품에는 각각의 서로 다른 특징과 독창성이 명확히 존재
          한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에 꽃이 소재로서 장미꽃을 한 다발 안고 있는 운명적인 여인으로 등장한다면, 임
          혜영 작가의 화폭에는 환상적인 무늬의 꽃들이 배경으로 몽환적인 표정의 여인 주변을 싸매고 있다.

          그녀는 초기 작품 ‘옷에 마음을 놓다’ 연작에서부터 자화상처럼 핑크빛 입술과 볼그스름한 얼굴의 사랑스
          럽고 자유로운 영혼의 찬가를 속삭이는 화가로 출발했다. 단순하게 여인이 주제가 되어 전면에 등장하면
          서 점진적으로 옷의 패턴이나 무늬들이 부각 되었고 자연스럽게 여인의 사랑스러운 표정 주위로 꽃들이 풍
          성하게 피어나는 여인들의 자태로 그녀만의 화풍을 구축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은 옆모습의 자세가 황
          홀한 표정과 행복한 감정표현으로 보는 사람들을 황홀한 지경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최근 임혜영 작가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양식은 <환생> 시리즈와 <Flora> 시리즈이다.
          예를 들면 <환생-월화밀회> 시리즈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조선 시대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 주제인 달밤
          아래 밀회의 정경을 빌리면서 극적인 풍경의 대비로 스토리를 꾸미는 흥미로운 구성이다. 알다시피 혜원
          신윤복은 단원 김홍도와 함께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로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작가이며 상류사회의 풍속도
          나 기녀, 유락도를 가장 감칠맛 나게 그린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런 이런 시대의 명화를 현대미술에까지 소환하는 제작 구성은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등장하지만 살바르
          도 달리나 리히텐슈타인, 페르난도 보테로 등에게서 명화 패러디나 차용으로 등장했었다. 그러나 이들과
          다르게 임혜영의 작품에는 아주 집중적으로 혜원의 그림이 본인의 작품과 절묘하게 쌍을 이루어 최적의 하
          모니를 이루어 내고 있다. 혜원의 화폭 위에 겹쳐진 임혜영의 사랑스러운 여인, 그녀는 인생의 기쁨과 즐거
          움이 충만한 채 밀회의 현장과 만나는가 하면, 어느 따뜻한 봄날 양반과 기녀가 은밀한 밀회의 현장에 임혜
          영 표의 예쁜 여인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다른 그림에서도 대부분 화면의 배치에서도 좌우로 혹은 상하로 당시 유흥의 풍경과 인물의 조화를 부드
          럽고 우아한 필선으로 따뜻하게 일체화하는 작품들이 지배적이다. 마치 임혜영의 현대판 『풍속도첩』 이나
          『미인도』로 불릴 만한 양반층의 풍류와 남녀 간의 연애를 다시 보는 듯하다. 이러한 작가의 독특함은 조선
          시대 풍경을 21세기에 다시 불러들여 도시적 감각으로 풀어내는 꿈과 현실의 풍경을 결합하는데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작가는 그 시절의 임혜영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꿈을 이처럼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해석된다. 그러한 증거는 더욱이 가늘고 유연한 꽃의 필선과 오방
          색에 근거한 원색의 산뜻한 색깔과 풍성한 꽃에서 더 확인된다. 게다가 현대적인 구도와 독특한 상황 설정
          으로 이 화면은 향긋하기도 다분히 몽환적이고 로맨틱 한 분위기로 충만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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