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권용택 초대전 2023. 11. 15 – 11. 30 아트스페이스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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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산하의 풍경에서 수천수만 년의 역사를 본다. 그 역사의 기억을 본다. 풍경의 역사는, 풍경의 기억은 그가
           서 있는 곳의 풍경이어서 그는 그것을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그가 실험했던 ‘겹 풍경’의 형식을 겸재의 화법
           과 그의 화법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렇게 해서 한 풍경이 밤과 낮도 되고 역사와 현재도 되는 중층적
           구조의 독특한 회화가 탄생한 것이다.

           풍경에서 역사를 보았으니, 그 수많은 세월의 자취를 보았으니 그의 백두대간 풍경들은 그저 산이요. 나무요. 길
           이 아니다. 그의 산에는 매의 날개 그림자에 휩싸여 있고, 거대한 백로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 산하를 다 뒤덮기도
           하니 그것은 흡사 ‘붕’(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의 새는 공포가 아니다. 그의 새 그림자는 뭇 생
           명들이 깃들어서 삶을 회복하는 찬연한 생명의 품이다. 해그늘(日影)처럼 생명을 잉태하는 곳이다. <산 위를 걷다
           날다> 연작 중 (4)와 (5)는 그 날개가 품고 있는 것이 숱한 민중들의 춤이고 아우성이며, 환한 몸짓임을 보여준다.
           그의 세계는 지금이 거대한 새의 눈에 있다.

                                      - 2018 권용택 ‘새벽의 몸짓’ 도록 작가론 발췌. 미술평론가  김 종 길


           굴곡진 틈새를 가지고 있는 작은 조각의 돌들은 작가의 눈에는 저마다 특별한 형상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검
           푸른 돌의 피부 위에 물감으로 형상을 입혀 풍경으로 불러오니 어떤 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을 달리 했던 슬
           프기 그지없는 ‘부엉이 바위’가 되었고, 어떤 돌은 운무(雲霧)로 가득한 가득한 눈 쌓인 ‘한계령’으로 태어났다. 그
           뿐인가? 커다란 굴곡은 마치 산맥처럼 쪼개지고 갈라지니 어느새 백두대간(白頭大諫)이 되었고, 작은 틈새 사이
           로 꽃송이를 그려 넣으니 보랏빛 금강초롱이 핀 금강산과 두메양귀비를 노랗게 피어 올린 백두산이 되었다.

           이때, 그가 발견한 오브제로서의 ‘돌’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그림’으로 변주를 거치지만, 돌의 모양은 물론이
           고 굴곡과 틈새 역시 그대로 유지된 채, 그 “어떤 가공도 전혀 하지 않는 상태”에서 실명의 현실계로 변주되어 나
           타난다. 주지할 것은 회화의 비물질성은 자연의 속성을 허구(fiction)의 차원으로 불러오는 역할을 하는데, 3차원
           입체의 물질성이 자연의 실제(fact) 그대로인 까닭에, 그의 돌 그림은 자연 이미지의 환영이기보다 실제적인 자연
           에 기초한 또 다른 실제(實際)의 존재, 즉 ‘실재(實在)’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 2018 권용택 ‘새벽의 몸짓’ 도록 작가론 발췌. 미술평론가  김 성 호



           지금 권용택이 사는 하오개 그림 터는 강원의 평창 진부에 있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이 정선에 이르기 전,
           가리왕산과 나란히 서 있는 백석산이 만드는 또 다른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있
           는 돌과 그렇게 함께 호흡하며 대화한 것을 ‘돌의 표정’으로 담고 있다.

           권용택이 만난 돌은 그가 전에 보았던 풍경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장대하게 늘어선 능선과 계곡을 청석의 굴곡
           과 모양과 보는 방향에 따라 거의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돌 그림이 쌓이고 쌓여 이제 세
           상의 모든 풍경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되기에 이르렀다. 돌이 깨지거나 깎이며 자연적으로 생겨난 굴
           곡과 주름에 따라 형태를 살려내며, 산과 강에 기대어 부대끼며 살아온 삶과 시대의 아픔까지 아우르는 것을 담게
           되었다.

                                       -  2022 권용택 ‘돌의 표정’ 도록 작가론 발췌. 미술평론가  최 형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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