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양현식 개인전 2022. 10. 27 – 11. 3 정수아트센터 아트나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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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회복의 계기로
불현듯 날아든 역병에 세상이 변해갔다. 우리의 오랜 공동체 공간이었던 세상의 형편이 어렵다. 고향의 부모님조차 가까이서 뵙질 못한다. 세상을
학교, 교회, 카페, 식당들은 문을 닫았고 관광업계도 직격탄이 날아들었다 에워싼 갖가지 사연만큼이나 어려운 시대를 버텨내 가고 있다. 삶의 어려
가급적 얼굴을 대하지 말고 만나지도 말라는 방역수칙이 우리의 일상을 움은 물론이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 이삼백여 명의 사람들이 전대미문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의 병으로 세상과 이별하고 있다. 답답하여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다.
마치 14세기에 유럽을 휩쓸고 갔던 페스트균의 흑사병이 연상 되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질병과
말 그대로 참혹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끔찍했다 의 전쟁에 막막하기만 하다. 고려시대 모진 난리에도 불경을 목판에 새겼
"화가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혼란이 더 가중되고 있다" 라고 말하고 던 조상들의 절실함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네 조상들이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 전시는 정성(精誠)스런 작품으로 오늘을 만들었다. 작품이 부적처럼은 아
림을 오늘에 다시 그려본다. “용수오복이요 호축삼재”라는 말이 있다. 용 니지만 잠시의 치유와 잠깐의 회복의 계기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
(龍)은 오복인 행복 출세 장수 기쁨 재산을 불러오고 호랑이는 전쟁, 기근, 으로 붓질을 하였다. 영화 ‘역린’에 나왔던 중용(中庸) 23장(二十三章)의
역병을 쫓는다는 내용이다. 나의 이번 전시는 부귀자(富貴子)의 꽃인 모란 가르침이 떠올랐다. 唯天下至誠爲能化 “오직 천하에 지극히 성실함을 다
을 배경화면에 두고 용 호랑이 거북이 기린 잉어 봉황 등 상서로운 동물들 한다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래 성실함만이 이 어둠과 싸워서
을 불러 모아 목판 문양에 칼끝 대신 세필로 하나하나 새겨 갔다. 작품 중 광명을 되찾을 수 있다. 성실함만이 버텨갈 수 있는 양식이요. 싸워 이길
백수백복도가 있다. 한번 보기만 해도 재물이 굴러 들어오니 하물며 집에 수 있는 무기가 아니던가? 이번 작품을 통해 작은 위안과 새로운 희망을
걸어두고 매일같이 보면 수복강녕 자손번창 같은 소원 성취하니 가히 이 볼 수 있는 전시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루지 못할 것이 없어 영묘한 여의주와 같은 신통력이 있다 하였다. 2022, 10. 작가노트 양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