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양현식 개인전 2022. 10. 27 – 11. 3 정수아트센터 아트나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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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양현식의 서사적 민도(民圖)





            과거의 그림에서 현재를 희망하다

            이번 전시의 대다수의 작품에는 빛바랜 나무판 문양에 그려진 용이나 기린,              중국의 시인 도연명은 국화는 은둔한 선비며, 유교 사상가였던 북송의 주돈
            봉황이나 거북이 등이 등장한다.                                     이는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의 덕이요 세상에서 가장 부귀한 꽃은 모란이라
            고택 어느 한 벽을 차지하고 있었을 기원(祈願)이나 벽사(辟邪)의 민화 한 부           노래하였으니 모란이야 말로 부귀함을 상징하는 꽃인 것이다. 존귀성과 이루
            분을 차용한 의도적 표현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현재에서 바라보는 그림              어짐의 여의(如意)가 함께하는 <영묘여의주靈妙如意珠>등은 현대인의 미감
            의 민화(民畵)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일반 시민의 큰 뜻을 품은 민도(民            과 마음의 안식에 의미 있는 기운을 제공한다. 여기에 음과 양이 서로 조화를
            圖)가 된다. 도(圖)는 '그림이나 지도를 뜻하면서 그리다, 꾀하다 등의 의미를          이루면 좋은 기운이 일어난다는 화기치상(和氣致祥)의 제목을 가진 작품은
            지닌 ‘큰 그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힘찬 호랑이의 기운을 필두로 어렵고 힘겨운 코로나 시대에 희망찬 삶을 구
                                                                  원하고자 그려진 그림이다.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작품이 있다. 활짝 핀 모란꽃을 배경으로 민화
            에 많이 등장하는 쌍계도와 호접도가 있는 그림이다. 부귀의 흰 모란과 희망             예로부터 선조들은 공동체나 집안의 화평을 위하여 글씨뿐만 아니라 꽃이나
            과 내일을 상장하는 닭, 영혼과 불멸의 나비가 있으니 세상살이에 이보다 더             과일, 짐승이나 상상속의 생물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림으로 그려왔
            귀한 그림은 없을 듯 싶다. 그런데 제목이 오랫동안 잊지 말자는 장무상망              다.
            (長毋相忘)이다.                                             단순히 무엇을 상징한다거나 귀신을 몰아내는 벽사(辟邪), 가정의 화평과 행
            장무상망(長毋相忘)은 2천 년 전 중국의 기와에서 발견된 글귀인데 추사 김             복을 기원하는 기복신앙(祈福信仰)에 이르기 까지 많은 그림들이 일상과 함
            정희의 세한도의 왼쪽 하단에 낙관처럼 찍혀지면서 더 유명해진 말이기도                께하였다. 이러한 민생과 생활의 그림인 민화를 토착 종교와 결부시키는 경
            하다.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서는 오랜 벗인 이상적(李尙迪)과의 관계              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민간신앙의 영역으로만 보아서는 곤란하다.
            라고는 하지만 작가 양현식의 작품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민화와 설화에 나타나는 기물이나 생물들은 생활에 필요한 복합적 시대정신
            짝사랑하는 이에게 쓰는 연서처럼, 다른 누군가가 읽었을 때 그것이 아니라              의 발현이다. 길상의 의미가 강화될수록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인 서민들의
            고 우길 수 있도록 받는 이만 알아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 이중부호 이면           풍습과 감정과 감성이 결부된 현재의 풍속화라 보는 편이 더 좋다.
            서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로서 이별이 빈번한 코로나 시대에 누군가에게                자손의 번창이나, 벼슬을 얻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등에
            잊지말아 달라고 전달하는 애정 어린 그림은 아닐까? 아무튼 그림을 부적               대해 직접적 언급보다는 다른 대상을 대입한 메시지는 주술이 아니라 기원
            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면서 자신을 다짐하고, 더 나은 미래를             (祈願)과 마음가짐에 대한 다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준비하는 현재적 방식의 희망이다.                                    존경과 존중 행복 등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기 때문에 일상의 회화적
                                                                  감성에 더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가 있다. 백가지의 다른 모양의 수(壽)자와 복(福)
            자를 그리고 만들고 창작하면서 보는 이의 건강과 안녕을 빌었을 조상의 숨              최근의 현대미술의 특징 중의 하나가 화가 자신을 대신하는 캐릭터가 강조되
            결이 함께한다. 이 작품 또한 빛바랜 나뭇결 속에 어룡을 타고 노는 거북이             면서 개인의 것으로 사회의 것과 연결 짓는 유형이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
            가 등장하고 있다. 등용(登龍)과 장수(長壽)의 의미속에 현재의 호랑이, 내일           재적 관점과 같은 맥락에서 작가 양현식의 그림을 그림 보다 더 큰 서사적 상
            의 나비가 함께 그려지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오늘의 행복을               황의 도화(圖畵)로 바라봄직 하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중심으로 사람
            말하고 있다.                                               들이 이해하고 있는 상상의 동물들을 등장시키는 것과, 과거에서부터 내려오
                                                                  던 일반적 그림의 모양을 해체하면서도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희망과 기
            일상에서 사용하는 밥그릇이나 용기에 복(福)자와 수(壽)자를 넣는다. 장수
                                                                  원의 예술가적 재능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와 금슬을 상징하듯 베겟모 그림도 함께한다. 다섯 개의 발톱으로 그려진 <용
            수오복龍輪五福>, 용은 하늘에 오르면 비를 내리고 내려오면 못에 서리어 구
            름을 토해내는 변화무쌍함이 헤아릴수가 없는 신령스러운 상상의 동물이다
            허니 용은 오복 (행복 출세 장수 기쁨 재산)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전해오고
                                                                                         박정수 (미술평론, 정수아트센터 관장)
            있다 화가는 작품 (화중부귀자 花中富貴子)에 벽사 (僻邪)로서의 해태와 부
            귀(富貴)의 모란이 화면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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