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정회윤 초대전 3. 8 – 3. 25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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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재차 버드나무로 소재가 바뀌었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한참 동안 반복 상징으로 남아있고, 원형(그리고 원형
           적 풍경)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 원형적 풍경을, 원형적인 풍경에 대한 인상을 작가는 옻칠과 자개로 그리고 붙였다. 어쩌면 옻칠로 칠하고, 그 위
           에 마치 드로잉이라도 하듯 자개를 붙여서 그렸다고 해야 할까. 옻칠은 보통의 페인팅과는 그 생리가 다르다. 보통
           페인팅 회화는 중첩된 터치가 모이고 흩어지면서 형태를 만들고 그림을 만든다. 그러므로 터치가 붓질 그대로 보존
           되면서 쌓이는 것인데, 옻칠은 평평하게 펴지는 성질로 인해 붓질 그대로 보존할 수가 없다. 회화에서의 붓질 대신,
           다른 색층을 쌓아 레이어를 만든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사포로 표면을 갈아내면 부분적으로 밑칠이 드러나 보인
           다. 그렇게 갈아내는 과정을 통해서 비정형의 얼룩을 얻는, 마치 상처와도 같은 자국을 얻는, 때로 예기치 못한 우연
           적인 효과를 얻는, 그리고 그렇게 원하는 이미지며 질감을 얻는, 그러므로 사포질을 통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옻칠은 그 생리가 까다롭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어야 경화하는데, 사람으로 치자면 최악의 조건
           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타이밍이 중요한데, 경화와 함께 색의 변색도 같이 진행된
           다고 보면 된다. 경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최초의 색상 그대로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여차하면 색의 감도(색상과
           채도)가 떨어지기 쉽다. 이런 난이도 때문일까. 깊고 어두운 색감의 화면에 비해, 작가의 그림에서처럼 파스텔 톤의
           부드럽고 우호적인 느낌의 화면을, 밝고 화사한 색감의 화면을 얻기가 더 어렵다. 모르긴 해도 그동안 허다한 형식
           실험과 시행착오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서 색감만 놓고 보면, 단색이나 수평선이 중첩된
           것 같은, 아득하고 막막한 느낌의, 화면 안쪽으로 깊이를 만들면서 확장되는 것 같은, 그러므로 어쩌면 자연의 본성
           에 부합하는, 심플한 화면 구성이 미니멀리즘을 상기시키고, 색면화파의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자연감정 그
           러므로 평소 자연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자기표현을 얻고 승화된 형식을 얻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위에 작가는 버드나무와 때로 불꽃놀이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자개로 붙여 표현하는데, 작가의 그림에서 버드
           나무와 불꽃놀이는 각 정형과 비정형이라는 차이를 제외하면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 자개를 세로로 길게 잘라
           마치 점을 찍어나가듯 연이어 붙여 고정하는 끊음질 기법을 구사하는데, 부드럽고 유연한, 불어오는 바람에 반응이
           라고 하듯 허공을 흔드는 버드나무 가지를 표현했고, 일정한 패턴을 그리면서 일시에 쏟아져 내리는 불꽃을 표현
           했다. 여기에 외부의 빛에 반응하는, 그렇게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신을 보여주는 자개의 빛깔이 아마도 가녀린
           띠가 만드는 섬세한 감각이 관건인 끊음질 기법에 최적화된, 형식과 내용이 부합하면서 감각적 쾌감을 주는 경우라
           고 생각된다. 소금호수에서 올려다본, 칠흑 같은 밤에 투명한 깊이를 만들면서 발광하던 별빛 이후, 때로 소멸을 위
           해 추락하는 유성이 보여준 비현실적인 풍경 이후, 자연의 본성 그대로를 고스란히 포획한, 자연이 주는 감동으로
           사로잡는, 그런 경우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미묘한 색층(그러므로 차이 나는 색감)을 포함하고 있는 심플한 색면 구
           성과 대비되면서 더 돋보이는 경우라고 생각된다.

           영화에 보면, 로드무비라는 장르영화가 있다. 삶을 길에 빗댄 영화고, 잊힌 자기, 진정한 자기, 자기_타자를 찾아 나
           서는 여행에 빗댄 영화다. 작가의 작업이 그렇다. 작가는 자기를 찾아 세상 끝에 선다. 사막 위에 서고, 소금호수 앞
           에 서고, 버드나무 앞에 선다. 그렇게 작가에게 세상 끝은 버드나무에도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일상 속에도.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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