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박현희 초대전 2025. 9. 2 – 9. 15 갤러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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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생명의 선율 — 공간과 사운드 아트, 예술융합으로의 확장》

       글 : 박현희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교수,  조형예술학 박사)


       백색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무언가가 시작되는 생성의 장이다. 한지의 여백과 결이 일으키는 미세한 떨림 위로 빛이 스며들
       때, 조용함 속에서 생명력이 깃든 희망이 드러난다. 이번 전시는 관객이 걸음을 늦추고 시선·동선·광선의 변화를 따라가며,
       백색 속에 숨어 있던 빛의 생명력을 온전히 체감하게 한다.


       한지에서 솟는 ‘생명선’
       천연 닥죽을 찢고 겹치고 덧입히는 과정을 거쳐 선을 입체화한다. 이때 선은 단순한 윤곽을 넘어 시간·감정·기억의 궤적이
       되며, 표면 위에 올린 최상급 호분·천연 석채·금·은·수정 가루가 재료의 결을 따르며 조용하지만 깊은 리듬을 형성한다. 더해
       부드러운 색감의 곡선적 색선을 은은히 중첩함으로써, 백색 여백 속에 남는 감각의 잔향을 세밀하게 전달한다.


       공간–사운드로 확장되는 설치
       전시의 축은 한지 부조 평면과 더불어, 설치작품 〈생명 빛의 탑—빛 조각〉과 사운드 〈빛의 파동, 생명의 음악〉의 연동이다.
       〈생명 빛의 탑—빛 조각〉: 천연 석채로 채색한 캔버스를 수직으로 적층한 구조가 기단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상승의 리듬을
       드러낸다. 각 층은 빛의 입사각을 정교하게 조절해 표면 요철이 만드는 미세한 음영 변화를 극대화한다. 바닥에 배치된 작은
       육면체 ‘빛 조각’은 밀도·간격을 달리하여 중심(탑)–주변(파편)의 긴장을 만들고, 반사·반투명광을 받아 공간 전체에 잔광
       (after-glow)을 확산한다.
       〈빛의 파동, 생명의 음악〉: 보컬 없는 앰비언트 사운드를 낮은 볼륨으로 끊김 없이 반복 재생한다. 따뜻한 바탕음 위에 느린
       맥박 같은 리듬, 섬세한 반짝임, 종이·숨결을 닮은 질감을 겹쳐 한지 작업의 여백·호흡·잔광을 청각으로 번역한다. 관람자는
       작품 주변을 천천히 이동하며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울림을 체감하게 된다.
       보다갤러리는 이번 전시에 대해, “한지의 미세한 결과 빛의 변주를 통해 비어 있음의 깊이를 다시 보게 한다”며, 화려함 대신
       은은한 호흡으로 관객과 만나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전통을 동시대 감수성으로 확장한다고 전했다.


       관객이 더해 완성하는 ‘백색의 기록’
       전시장에는 관람자가 한지 카드에 자신의 호흡과 리듬으로 선 하나를 남기는 참여형 섹션 〈백색의 기록〉이 마련된다. 수집된
       카드는 매일 재배치되어 공동 설치 작품으로 확장된다. 박현희는 “백색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감정을 품은 존재의 공간”
       이라는 인식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는 단색화의 계보를 현대적으로 확장한 한국적 미니멀리즘이 주목받고 있으며, 한지 기반 조형작업
       또한 관심이 높다. 이 전시를 통해 백색미학·사운드·입체선을 결합한 독창적 조형 언어로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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