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김연식 개인전 6. 20 – 6. 29 갤러리모나리자 산촌
P. 5
파동과 입자의 드라이브 1 파동과 입자의 드라이브 2
45.5x45.5 38x38cm
Acrylic on canvas Acrylic on canvas
2023 2023
파동과 입자가 통합된 관점, 요컨대 다른 두 개가 아니라 세계의 단일한 묘사에 대한 보완적 국면이다. 양자역학의 편에선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
는 ‘자연과학이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아니며, 자연과 우리 자신이 상호작용하는 부분이다’, ‘새로운 물리학에 의하면 관찰자와
관찰된 것은 연관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고는 인문학과 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레오나드 쉴레인은 물리학자 보어의 제자로, 보어의 관점을 확
장시킨 철학적 입장을 소개한다. ‘파동과 입자처럼 정신(mind)과 우주는 뒤엉켜서 풀 수 없게 통합된다’(휠러). 이러한 해석이 암시하는 것은 정신
과 우주의 양상이 한 쌍을 이루는 체계라는 것이다. 미술과 물리학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다. 정산의 경우 불교적 세계관이 가세한다. [미술과 물
리] 또한 ‘우리시대의 범례(paradigm)에서 우리는 실재의 근본적인 요소로 네 가지를 인정하는데, 그것은 공간, 시간, 에너지, 물질이다. 이러한 네
가지 요소들은 총체적인 만다라를 형성한다’고 서술한다.
레오나드 쉴레인은 양자와 상상과의 관계를 언어학적으로 추적한다. 그에 의하면 상상력(imagination)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phantasia’에서 유래
하는데, 이것은 빛(phaos)가 그 어원이라고 한다. 먼저 ‘파동과 입자의 드라이브’ 전의 주제를 바로 표현하는 작품을 살펴보자. 작품 [파동과 입자
의 드라이브-5](이하 작품 제목은 번호로만 표기함)는 선들이 겹쳐 만들어진 파장 사이사이에 입자들이 배치된 상보적 우주을 이룬다. 작품 [-41]
는 또한 파동과 입자가 공존하는 우주다. 액체적 흐름과 거품을 동시에 품어 바닷물같은 자연 풍경으로도 보인다. 만약 그것을 풍경으로 본다면 그
것은 전지적 시점. 또는 마음의 시점이다. 파동과 입자는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운동의 양상이다. 첩첩이 연결된 그물이 여러 무늬를 만드는 작품
[-1]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내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힘이 있다. 어느 작품보다 뚜렷하게 구별되는 그물망의 선들이 있는 작품 [-10]은 높은 밀
도를 가늠케 한다.
작품 [-21]은 우주의 먼지가 뭉쳐서 우주를 형성하는 듯한 밀도 높은 힘의 파장이다. 혜성과 같은 움직임, 또는 소립자의 운동이 있는 작품 [-38]
전자파의 반향으로 형태와 운동을 파악하는 과학을 떠올린다. 이번 전시에서 구별되는 작품군 중 하나는 서로 간섭하는 둥근 형태들이다. 그의 작
품 속 다양한 그물망 형상은 상호적 간섭의 결과이기도 하다. 간섭파 형상은 색과 밀도를 달리한다. 작품 [-2]는 서로 간섭작용을 하는 둥근 파장들
을 보여준다. 작품 [-7]에서 간섭파가 있는 영역에 밀물처럼 치고 들어오는 또 다른 형상은 힘과 힘이 복잡하게 마주한다. 작품 [-11]은 영역과 영역
이, 파와 파가 만난다. 작품 [-27]에서 파동이 없는 부분은 파동에 더욱 주목하게 한다.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정산의 작품에서는 색의 힘이 복잡한
형태들과 맞물려 폭발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작품 [-32]는 밝은색의 조합으로 엄청나게 활기찬 결의 흐름을 보여준다.
[미술과 물리]는 19세기 중엽까지도 색을 물질의 독특한 속성이라고 확신했지만, 19세기 초에 과학자들은 색이 변화하는 파장의 빛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정산의 작품에서 색은 파장이다. 작가는 빛에 내재된 파장을 색으로 보이게 한다. 정산의 작품 속 빛과 색은 뉴턴이 모델화한 스펙트럼
(spectrum)을 무한히 세분화한다. 특히 푸른색은 지구에서 우주적 차원을 가지는 바다를 떠올린다. 그의 ‘바다’는 안팎에서 끝없이 움직인다. 작품
[-24, 29]는 블루가 가지는 다양한 뉘앙스가 결을 통해서 나타나며, 작품 [-9]에서 푸른 계열의 색감은 유동적 이미지에 바다같은 액체적 성격을
부여한다. 푸르고 하얀 색감이 결합된 작품 [-3]는 밀물처럼 밀려든다. 그의 작품에서 바위나 육지 또한 운동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액체적이다.
작가는 딱딱한 암석에서도 대양을 본다. 단단한 무기질적 표면이 있는 [-2]에는 유동적인 바다가 있다. 브라운 계열의 색감이 있는 작품 [-30, 46]
은 단단한 것에도 내재될 유동성을 예시한다.
홍수나 댐이 무너졌을 때 흙탕물이 범람하듯이 말이다. 작품 [-37]의 검붉은 색감은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흐르는 용암을 연상시킨다. 작품 [-12]
에서 유동적 이미지에 새겨진 균열은 모든 단단한 것들의 유동적 근원이다. 균열은 단단한 것이 다시 유동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증후다. 정산의
작품은 위와 아래가 분명히 선택된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아래의 형상은 풍경의 전경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작품 [-4] 기암괴석 또한 그
내부에 그물망을 품고 있으며, [-20]은 바닷물 들이치는 해변의 풍경같은 시야가 있다. 지형도는 풍경의 또 다른 양상으로 시점이 다를 뿐이다. 심
연의 호수가 떠오르는 지형이 있는 작품 [-15], 강과 그 어귀가 떠오르는 작품 [-18]은 지형도 처럼 등고선으로 지형을 표시한다. 해양과 대지의 유
동적 형태는 그것이 이루는 생태계의 산물인 유기체에도 반복된다. 생태계는 그 자체가 ‘생명의 그물’(프리초프 카프라)이다.
색감 때문에 식물이 떠오르는 작품군은 무엇도 빠지지 않는 촘촘한 그물망인 우주의 양상이다. 물론 유기체의 외적 재현은 아니고, 운동의 내부,
그 단면이나 단층같은 모습이다. 작품 [-16]은 보라색 양배추의 단면이 떠오른다. 작품 [-43, 45]는 세포적 차원을 관찰하기 위해 횡단면을 펼친다.
녹색 계열이 포함될 경우 식물 세포같은 양상이며, 식물의 씨앗에도 성장을 통해 펼쳐질 수많은 주름이 잡혀있다. 무채색 톤의 망은 형태에 집중하
게 한다. 밝음과 어둠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빛은 특별하다.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작품 [-34]에서 밝은 선들은 반사광 같다. 무채색 흐름은 둥근
캔버스의 작품 [-47]에도 보인다. 온난화 때문에 녹는 북극해의 풍경같은 작품 [-14, 44]은 해수면을 상승시켜 또 다른 파를 형성할 것이다. 둥근
캔버스처럼 같은 형식의 캔버스 여러 개가 나란히 걸릴 때 잠재적인 동감이 있다. 무채색과 유채색 사이의 상호전환이나 그물망의 농도와 밀도 변
화같은 움직임이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