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박명호 초대전 3. 12 – 3. 27 장은선갤러리
P. 2
녹색의 정원 - 드넓은 기억의 풍경들
< 세계는 크다, 하지만 우리들의 내부에서 그것은 바다처럼 깊다. >
Rainer Maria Rilke
자연(自然)은 예술가들에게 세계에 대해 모든 것을 상상하도록 하고 혹은 번역해야 할 과제를 부여한다. 우
리들은 바다나 광야의 무한함 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명상하는 가운데 단순한 기억이나 추억에 의
해 그 웅장함을 향한 관조의 반향을 우리들의 내부에서 새롭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정녕 추억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몽상가(예술가)의 상상력이 그 홀로 무한함과 드넓음의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확장시킬 수 있지
않은가?
자연의 장소를 은밀한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낭만주의 화가의 감성을 느끼게 하는 박명호의 작품 전시는
“녹색의 정원; 드넓은 기억의 풍경들”이란 테마로 시작한다. 그의 작품에서 대부분을 이루는 소재들은 크게
셋으로 구분되어진다.
첫째, 그의 유년시절은 ‘바다’의 기억을 담은 풍경들이다. 늘 푸른 바다의 초록빛 물결, 구비치는 파도 역시 녹
색의 끝없는 솟아오름으로 역동한다. 그 위를 떠도는 배 한 척은 그야말로 장엄함을 이룬다. 과거의 드넓은
기억의 편린들을 이토록 생생한 에너지로 다시 돌이켜 담아낼 수 있는가? 그에게 있어서 바다는 자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며 무한함을 향한 항해의 발판인 것이다.
둘째, 그의 풍경 속에는 바다와 들판은 색으로 구분되어지지 않는다. 들판이 바다색이고 바다가 들판색을
이룬다. 멀리서 비쳐 오는 알 수 없는 영원의 빛은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들에 의해서 그 화려함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황금빛의 들판을 연상하게 하면서 그 녹색의 강한 힘은 소멸시키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자연을 ‘녹색의 정원’으로 번역할 때 상징적 기호로서 사용한 것이며 그것은 희망적 요소를 가득 담고 있지
않은가?
셋째, 그의 작품 속에는 다른 풍경과 차별된 이미지가 전개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정물이라고 말하
는 ‘꽃’이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가 그려내는 꽃은 완전한 의미의 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확대’된 꽃의 이미
지는 그의 바다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배’ 한 척의 존재와도 같다. 왜냐하면 바다를 그리듯이 배경을 처리하
고 꽃을 풍경처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재현적 태도에서 벗어나 “감정”의
형태를 만들어 내고자 한 것이다.
보들레르(C. Baudelaire)의 텍스트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예술작품이 표현해 주는 것은 결코 어떤 개념
자체보다는 그것이 주는 감정(感情)과 감동(感動)이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차라리 감정과 감동의 ‘형태’
이고 ‘형태’의 내용을 완성하는 것은 감상자나 관람객이다.>>
자연을 드넓은 세계처럼 바라보기 위한 박명호 회화의 비젼은 “녹색의 정원; 드넓은 기억의 풍경들”이란 테
마로 그 자신의 회화만이 군림할 수 있고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는 생명 성을 기대해 본다.
- 조형예술학박사 한 광 숙